웹디자인기능사실기 강의
같은 조 언니는 로비 1층에서 체온 체크하는 일을 거의 전담으로 맡겨버리고, 대체로 나는 매뉴얼의 시간에 따라 도서관의 각 층마다 각 실마다 쏘다니면서 사서 선생님들의 일을 돕거나, 시키지도 않은 허드렛일을 하는 등 움직이는 일을 했다. 일하면서 도서관을 구경하는 게 좋았고, 일을 해야 되다 보니 이용자들의 출입이 되지 않는 곳까지 갈 수 있어서 재밌었다. 틈틈이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4시간은 후딱 지나가 있었다.
같은 조 언니와 만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약간 서먹했지만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도서관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부터 얘기를 나누다가 내 전공이 소프트웨어공학이고 웹디자이너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언니는 하나 제안을 했다.
"선생님, 이거 강의할 수 있겠다~ 그렇죠? 할 수 있죠?"
그 강의는 웹디자인기능사 실기 시험을 준비하는 상업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실기 강의를 해주는 일이었다. 물론 가능했지만 하기 싫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도서관 일이 끝나면 집에서 작업하고 있는 일도 있었고, 여러 사람 앞에서 해야 하는 강의는 해본 적이 없어서 괜히 피곤해지는 일만 생기는 것 같아 부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제안을 해 준 같은 조 언니에게 오히려 내가 강의 준비를 도와줄 테니 직접 해보시라 격려했다.
웹디자인기능사는 내가 디자이너로서 일을 그만두고 개발자로 취업하기 위해 국비지원 개발 학원을 다닐 때 취득한 자격증이었다. 개발자가 되기 위해 학원을 다니면서 디자이너 자격증을 취득한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웹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자격증이 그다지 도움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따지 않았었는데, 막상 이제부터는 웹디자이너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땄었다. 이 세계에서 특히 '기능사 자격증'이라는 게 변별력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웹디자이너로서 마지막이니 공식적인 인증을 받아두는 일이라고 느꼈고, 공식적인 인증은 내게 있어서 중요했다. 학벌에 대한 열등감 덕분에 그렇게 되었다.
자격증이 다가 아닌 세상이지만, 내 분야라고 생각한 자격증은 틈날 때마다 하나씩 따두었다. 자격증이 있다는 것은 "최소한 해봤다"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웹디자인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로 개발자로 취업 준비했었고, 그 이후로 한 곳의 회사만 다녔기 때문에 써먹을 일 없이 지금까지 시간이 흘렀다. 웹디자인기능사 자격증 따고 6년이나 흐른 지금이 돼서야 이 자격증 얘기를 도서관에서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같은 조 언니는 본인이 직접 해볼까 하다가 이내 본인은 안 하겠다는 결심을 한 듯, 내게 내 이력서라도 그쪽에 보내보자고 했다. 안될 수도 있는데, 뭐 어떠냐고. 이력서 넣는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데 뭘.
언니는 나와 비슷한 세계에서 일을 했었고, 모바일 디바이스를 대응하지 않아도 되던 시기에 일을 그만둔 터라 더욱이 자신 없어했다. 그래서 일 얘기할 때만큼은 아이를 키우느라 경력이 단절된 기간만큼 주눅 든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의 고사 끝에 이력서를 넣게 되었다. 이력서를 넣은 지 얼마 안 되어 내가 강사로 확정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내 이력이 지원자들 중에서 가장 돋보였다 했다. 그 말을 전해주어 고마웠다.
갑작스럽게 퇴사하고, 실업급여를 받다가 앞으로 뭐해 먹고살까 고민하던 시기에 도서관에서 와서 일하면서 나는 항상 나의 쓸모에 대해 걱정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제안을 해준 언니에게 고마웠고, 강의 경험이 없는 나에게 강사로 뽑아준 그곳도 고마웠다.
강의는 코로나 때문에 짧은 기간이었다. 그렇지만 도서관 업무 시간과 살짝 겹쳐서 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