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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y 18. 2024

십구일. 내진

토마토파스타



골반 내진이 있던 검진 날.

자궁 경부의 딱딱한 정도, 길이, 자궁 경부가 얼마나 열렸는지를 확인하는 검사다. 또한 태아가 얼마나 골반 내로 진입했는지와 골반 형태도 알 수 있어 자연분만 시 꼭 거쳐야 하는 절차. 담당의가 직접 두 손가락을 질내에 삽입하기 때문에 상당히 불편한 검사로 알려진 일명 ‘굴욕 3종’ 중 대표다. 나머지 두 개는 분만 전 관장 그리고 제모로, 제모는 요즘 왁싱을 미리 하고 가는 산모가 많아져 반드시는 아니게 되었다. 내진 또한 제왕절개를 하기로 미리 마음먹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면 한 번도 안 해도 된다.


굴욕적이면서 너무 아프다는 후기가 많기에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진이 굴욕적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고(그럼 검사 때마다 굴욕을 느끼나) 얼마나 아프길래 다들 그런 얘기를 하는지가 걱정. 초음파로 오늘의 아가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아가는 3킬로그램으로 주수에 적당한 몸무게와 그 새 더 찰랑거리는 머릿결이 자랐으며, 혀를 날름날름 나른한 모습의 얼굴을 잠깐 보여줬다. 그리고 간호사 분이,


“내진의 시간이 왔습니다. 치마 갈아입고 나오세요, 산모님. “


윽.

초음파 검사 바로 전 실시한 태동검사를 봐주신 선생님 왈, 내진할 때 숨을 길게 내쉬면서 질에 힘 안 들어가게만 하면 괜찮다고 하신걸 상기하고 최대한 힘을 풀었다. 내진은 약 4, 5초 만에 끝난 것 같다. 생각보다 순탄하게 지나간 느낌. 오, 할 만 한데.


아기 성숙도가 적당해서 얼른 나와줘야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고 낳을 텐데, 아직 골반 근처로 내려오지 않았고 경부도 딱딱한 편이라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고 하신다.

건강히 주수 잘 채우고 나오자 한 걸 알아들은 걸까.

너무 많이 커지면 우리 둘 다 힘들어진단다, 이제 적당히 놀고 나올 준비 하자.


견딜만했어도 내진이 자극이 되었는지 배가 전체적으로 불편한 데다 아직 낫지 않은 허리로 오늘은 남편이 튼튼한 두 팔 걷어붙이고 파스타를 만들었다. (재료 준비까지는 내가 다 했지만) 나름대로의 플레이팅까지 신경 써서 한 접시 예쁘게 해 주니 아파도 맛있게 잘 먹게 된다. 아기가 너무 커지지 않게 끝까지 식이조절 신경 쓰라고 하셨지만 싹싹 비운 그릇. 이제 한 팀이 된 듯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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