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원하는 건 다 모아놓고 보자는 생각인 것 같은데
주변의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내 가장 큰 취미는 책 '수집’이다. 지금보다 한참 어릴 땐 취미가 책 '읽기’였는데, 나이가 들 수록 책 읽기는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책 수집이 점점 두각을 나타내더니 어느새 가장 큰 취미로 자리 잡았다.
책 수집의 묘미는 일단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서점의 (나 같은 경우는 교보문고 온라인) 장바구니에 책을 차곡차곡 담아놓고, 어느 날 갑자기 너무 피곤하다거나, 기분이 안 좋다거나, 왠지 그냥 뭔가 사고 싶거나, 혹은 그냥 책이 사고 싶을 때 그 장바구니 속 책 중 몇 권을 골라 (대략 10만 원 내외로) 주문하는 것이다. (참고로 내 장바구니에는 늘 대략 100만 원어치의 책들이 담겨 있다. 권수로 치자면 50권 정도...) 책을 주문하고 새 책을 담고 하는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장바구니 속의 책의 수가 마치 무슨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유지된다는 게 가장 슬픈 점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워낙 책을 좋아하기도 했고, 책은 꼭 사서 깨끗하게 봐야 한다는 이상한 고집도 있어서 집은 늘 책으로 넘쳐나다 못해 터져 나갈 정도다. 거실에는 당연히 책꽂이가 있어야 하고, 방에도 당연히 있어야 하고, 책꽂이는 '당연히' 두줄로 책을 꽂아야 하며, 그러고도 늘 여기저기 책이 널려있다. 심지어 이론 서적이 아닌 이상, 한번 읽은 책은 다시 읽지 않는 습관까지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왠지 자꾸 책을 사서 수집한다. (이건 정말 수집이다!) 그래서 어릴 때는 소원이 아무도 없는 큰 서점에 혼자 한 2박 3일 정도 갇히는 것이었기도 했고, 한 때 교보문고 사장님이랑 (누군지도 모름) 결혼하는 게 꿈이기도 했다. (그러면 거기 있는 책 그냥 다 읽을 수 있고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 내리 글만 읽는 한량 선비였을지도.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단 내가 좋아하는 활자가 가득하기도 하고, 그 활자 안에 상상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새로운 내용들이 들어있기도 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생각들을 해볼 수 있어서 인 것 같다. 생각이 많고, 어렵고 새로운 걸 좋아하고, 뭔가 배우는 걸 흥미 있어하는 내 성향과 딱 맞아떨어지는 무언가가 아닌가 싶다. 어릴 때는 지금만큼 할 일이 없었으니까 (공부도 내가 좋아하는 것만 했지 성적을 위해 억지로 막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기 때문에) 하루에 두세 권씩 읽을 정도로 많은 책을 봤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예전보다는 바쁘기도 하고 할 일도 많고 체력도 떨어져서 책을 많이 읽을 수가 없으니 그 취미가 '수집'으로 변질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구입해서 책꽂이에 두고 그냥 만족스러워하는 거지.
이렇게 집에 읽지 못한 책이 쌓이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는 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언젠가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책은 원래 사서 쌓아두는 거다(?), 원래 책은 수집하는 게 맛이다(?) 뭐 그런 말씀을 하셔서 '아... 나만 이런 게 아니군.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되는 거였구나!'라고 생각하며, 더 당당하게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사람은 원래 나한테 필요한 말은 잘 기억한다).
그래도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사놓으면 언젠가는 읽긴 읽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겠어!’라는 생각이 들 때 책꽂이를 보았는데 전부 다 이미 읽은 책이라면 얼마나 의욕이 저하되겠나! 책꽂이를 봤을 때 읽지 않은 책들이 많아 고를 수 있는 즐거움도 가지고,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도 채울 수 있으니 나름 책 수집이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얼마 전에는 약 5년 전쯤 구입했던 육아서를 새삼스레 읽으면서 책 내용과는 별개로 '내가 그때 이 책을 왜 샀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아무튼 나는 원하는 책을 읽지 못하는 것 이전에, 내가 원하는 책을 소유하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건가 라는 생각도 좀 했었다. 혹은 내가 뭔가 더 열심히 해야만 할 것 같은데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책을 사서 모아두는 것으로 안정시키거나. 아니, 책은 도서관에도 널렸는데 지금 당장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굳이 사서 쌓아두는 건 다른 이유로는 설명이 잘 안되니까.
그래도 일단 사서 집에 꽂아두면,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즐거움을 두 번이나 누리며(책 구매할 때와 책 읽을 때) 언젠가 그 제목이 눈에 들어올 때 빼서 읽어보긴 하니까 괜찮은 게 아닐까 라는 자기 위안을 해보면서... 책을 주문하고 싶은 욕망에 져서 오늘도 또 책을 주문하고 말았다는 말로 마무리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