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못하던 나날들
코로나로 일상이 달라진 지 거진 6개월이 되어간다. 나의 가장 최근 글이 '집순이'인 것을 보면, 이 달라진 일상이 이리도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였겠지. 이제 더 이상은 unnormal이 아닌 new normal이란 단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을 보며, 지금의 이 시간이 앞으로는 '일상'이라 불리게 되는 거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딱히 코로나에 대한 글을 쓰려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로 인해 새삼스레 '아 세상이 참 빠르게 달라지는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을 적고 싶었을 뿐. 바이러스조차 이렇게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하는 동안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오래 준비해서 세상에 내놓은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마무리되고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있고, 상담자로서가 아닌 연구자로서의 새로운 시작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담자와 연구자의 역할과 사용하는 사고의 방향은 비슷하면서도 참 달라서,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도 때때로 하게 된다. 잠잠해지는 듯하더니 다시 늘어나는 코로나 확진자의 영향으로 대면 상담은 더더욱 조심스러워지고, 화상이나 전화로 하는 상담이 마치 상담의 원래 형태 인양되어버렸다. 이거라도 어디냐 싶다가도, 벽 하나를 두고 만나는 내담자의 세상이 더 어렵기도 하다.
세상에는 수억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다. 나도, 내 남편도, 친구도, 내 내담자도 모두 그렇다. 내 세계 곳곳을 잘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세계의 어디에 무엇이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세계를 함께 알아가 보는 과정이 '상담'이고.
다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렵다. 어제 만났던 30년 이상 상담하신 슈퍼바이저도 '상담은 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라고 하셨는데, 아직 4년이 채 안된 나 역시도 하면 할수록 너무 어려운 것이 상담인 것 같다. 내가 그나마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내 세계도 아직 속속들이 다 모르는데, 다른 사람의 세계를 아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렵겠어. 그래서 그저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 사람의 세계에는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없는지,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는지, 어떤 색이 있는지 천천히 살펴보고 또 들여다본다.
간혹 우리는 참 쉽게 '누군가를 이해한다' 혹은 '누군가를 안다'라고 말한다. 정말? 얼마나 알고, 또 얼마나 이해하는데? 우리는 어쩌면 나의 세계 일부분을 어렴풋이 보면서 누군가를 이해한다, 안다고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섣부른 위로가, 공감이, 배려가, 도움이 때때로는 상대에게 폭력으로 전달되는 것이겠지. 좋은 마음이, 선의가 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겠지.
다른 사람의 세계를 섣부르게 단정 짓지 말자고 매번 다짐한다. 내가 지금 보는 상대는 그 세계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거라고. 그 안에 어떤 넓은 우주가 있는지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거라고. 그리고 그 세계와 그 우주를 어떻게든 더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정말 노력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상담은 너무 어렵다고 새삼스레 생각하고 있어서,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또) 새삼스레 다짐하게 되어서 일기장처럼 주절주절 적어보는 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