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뜰 Mar 27. 2019

여행자들의 천국

요양과 휴양 사이

* 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태국. 이곳에서 나는 요양과 휴양 그 중간 즈음의 여행을 하고 싶었다.


덜컥, 몸만 온 여행이었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지는 바깥을 바라보며 가이드북을 뒤적였다. 방콕이 '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태국은 유명 여행지들이라면 하나 이상은 갖추고 있기 마련인 놀 거리, 볼거리, 먹거리 세 가지 중 세 가지 모두를 갖춘, (게다가 물가까지 저렴한!)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


  책을 이리 넘기고 저리 넘긴 끝에 결정한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바로 요양과 휴양 사이.

  평소 무리하지 말자는 주의라 영혼을 갈아 넣는 일도, 내가 아닌 다른 것을 우선순위에 둔 일도 거의 없는 나지만 그래도 꼽아보면 졸업을 한 학기 앞둔 방학부터 지금까지 줄곧 노동을 했다. 스스로의 생계를 위해,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떳떳하게 내 힘으로 내가 먹고 입을 것을 마련했다. 물론 그 대가는 끊임없는 마감과 마감과 마감. 자본가가 아닌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결국 시간과 노동력을 파는 수밖에. 20일간의 단꿈이 흩어지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마감이 줄줄이었다.


  마감과 마감 사이에서 나도 잠시 마침표 하나를 찍어 넣고 싶었다.


*


  혹자는 다들 그렇게 사는데 웬 엄살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남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 중 누구도 내가 아니므로.

  내 행복은 내가 가장 잘 안다. 행복의 감각을 익히기 위해 그동안 부단히 노력해왔기에 확신할 수 있다. 그러니까 꼭 보아야 할 것도 없고 꼭 해야 할 것도 없다. 그런 것에 얽매이기 시작하면 결국 껍데기뿐인 여행이 되고 말 것이다. 그냥 그날그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자.

  그렇게 20일간 별다른 걱정 없이 뒹굴뒹굴, 맘 가는 대로 지내다 돌아가자-

  나는 전화로 방콕 시내의 한 마사지샵에 풀코스 전신 마사지를 예약했다.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 전에 시간이 남아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과연 듣던 대로 불교가 국교인 나라답게 방콕 건물이나 가게 앞에는 작은 제단이 으레 서 있기 마련이었고, 대부분 관리가 잘 된 모양으로 마치 방금 전에 사람이 다녀갔던 양 향이며 음식들이 자주 올라가 있었다.

  음식은 나중에 치우는 걸까 생각하던 찰나 새들이며 길 위의 짐승들이 태연스레 제단의 음식을 집어갔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가 이런 건가. 문득 어젯밤 보았던 개들이 떠올랐다.



  그런 사소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노란 꽃이 잔뜩 핀 나무를 목표로 걸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따뜻했다. 따뜻하다 못해 살짝 더울 지경이었다. 1월의 여름이라니.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국의 겨울 동안 매년 태국에 와서 지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태국 방콕에서 보내는 첫날부터 아주 오래도록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표시가 된 사진은 freeqration, pixabay 등의 무료 이미지 사이트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콕은 따뜻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