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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살기 Mar 14. 2023

서울은 정말 복잡한 곳이다.

서울역에서의 아찔한 추억

저는 소위 시골이라는 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기 위해 유학을 떠난 촌놈입니다.

19년을 시골에서 살다 보니 서울에 대한 정보라고는 눈 뜨이고 코베인 다라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서울이라는 곳은 저에게 무섭고, 매정한 곳이라고 인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서울에 가는 것에 들떠 있었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전 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대전에서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대전역으로 갔습니다. 너무 들떠 있었던지, 기차 출발시간보다 1시간이나 먼저 도착해 버렸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차역 플랫폼에서 분식이나, 간단한 과자 같은 음식을 팔았습니다. 거기서 가락국수와 김밥을 시켜서 먹으면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릅니다. 여기가 맞나? 저쪽 플랫폼인가? 기차시간은 잘 본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음식은 잘도 먹었죠.

그렇게 도착한 서울역은 정말 컸습니다. 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대우건물은 제 생각보다 더 컸습니다. 기차를 타고 오는 내내 건물을 끝까지 올려다보는 그런 촌스러운 짓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그 건물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소리까지 내며 끝까지 쳐다보고 말았습니다.

서울역을 나오면 보이는 대우건물 (출처 : 오마이뉴스)

그래서였을까요? 누군가 제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 저기요.. 저.. 담배... 하나.. 만.. 주실 수... 있을까요...?”


서울에 도착해서 처음 대화한 사람은 바로 서울역에서 살고 있는 노숙자 아저씨였습니다.

안 주면 해코지할까 봐 무섭기도 하고, 얼른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주머니 속에 있는 담배를 꺼내주었습니다.


“에이... 씨... 이거... 말고... 디플(디스 플러스).. 그거... 없어..?”


그 당시 저는 담배를 멋으로 피우는 중이었기에, 말보로(필터색이 갈색인 종류)를 피고 있었습니다.

담배를 얻어 피는 사람이 저에게 자신이 피는 담배가 아니라며 면박을 주는데, 순간 화가 나기도 했지만 역시나 무서웠기에,


“없어요. 저 이거 펴요.”


라고 하면서 그 자리를 떴습니다.

그렇게 서울역을 나와 지하철을 타러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지금은 기차역과 지하철역이 연결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기차역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야 했는데, 두리번거리면서 지하철역을 찾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표를 살 수 있는 장소가 있고, 그 위에는 커다란 노선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2001년 당시 지하철 노선도

지금과는 많이 다르고 노선도 단순하지만, 지하철을 처음 타보는 저로서는 양재역까지 가는 방법을 찾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차라리 미적분 문제를 푸는 게 나을 정도로 말이죠. 정신 딱 차리고 매표소로 가서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양재역이요.”


그러자 그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시며,


“2구간, 700원이요.”


라고 말씀하시며, 노란색 표를 주셨습니다. 그 아저씨도 저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나셨는지 비웃음이 아니라 마치 자식을 바라보며 웃는 부모님의 웃음을 지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주머니에서 오백 원짜리 1개와 백 원짜리 2개를 꺼내어 드리고는 지하철 플랫폼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또 한 번 저를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방향을 모르겠고,

두 번째는 제가 가려고 하는 곳은 충무로역인데 충무로행 열차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누구에게도 어떻게 가는지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투리를 쓰고 있었고, 지금과 달리 숫기도 없어서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역사 건너편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겨우겨우 충무로행 열차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역에서 1시간 걸려 도착한 양재역에서 버스를 타고 외삼촌댁을 갔어야 했는데, 버스는 탈 수 없었습니다.

지하철도 이리 무서운데, 버스는 어떻게 타겠습니까..


그렇게 걸어 걸어 또 1시간을 걸어, 외삼촌댁에 도착한 기억이 갑자기 났네요.

아마도 지금 티브이에서 나오는 ‘응답하라 1994’ 때문이 아닐까요. 참 재밌게 봤는데, 그 이유가 아마도 동질감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처음 서울에 와서 택시비를 과하게 내고, 사투리를 숨기려고 어색한 표준어를 구사하며, 지하철을 탈 때마다 긴장하는 모습에서 저를 떠올린 것 같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들은 한 번쯤 보시면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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