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일살기 Feb 20. 2023

품었던 사직서를 던지다.

직장인 끝, 자영업자 시작.

2022년 12월.

늘 그렇듯이 나는 역곡의 한 이자카야에서 친구 둘을 만났다.

내가 힘들 때, 즐거울 때 항상 같이 해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공부한답시고 돈없이 빌빌 거리면, 나와서 맥주에 치킨을 사주고, 

시험에 떨어져서 정신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있으면 집에와서 정신없게 해주는 그런 친구들이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다닌 곳이니 벌써 10년이 넘은 곳이다.

이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오코노미야끼 때문이다. 나는 오코노미야끼를 좋아하는데, 이 곳에서 먹는 오코노미야끼는 정말이지 최고다. 거기에 소맥을 마시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나 '나 회사 그만 두려고'

친구A '왜? 또 팀장이 지랄해?'

나 '어. 근데 업무관련된건 참겠는데, 인격모독은 정말 못참겠다.'

친구A '뭐, 하루이틀이냐. 참어, 혹시 알어? 그 팀장 또 모가지 날아갈지.'

친구B '그래, 맨날 그만둔다고 하면서 결국 팀장들이 먼저 날아갔다. ㅋㅋㅋㅋ'

나 '아씨, 이번엔 진짜야. 그만 둘거야. 나 하고 싶은거 할거야.'

친구B '지랄마. 너는 절~대 못그만둬. ㅋㅋㅋ'


몇년째 이런 대화를 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날은 조금 달랐다. 물론 내 마음가짐이 이전과는 조금 달랐을수도 있고, 친구의 장난을 받아줄만큼의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나는 10년을 다닌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처음에 나를 쳐다보는 팀장님의 눈빛은 '니까짓게 감히 이따위 협박을 해?' 였지만, 퇴사사유를 들으면서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았다. 우리회사는 퇴사할 때 퇴사사유를 설명하고 나가는 문화아닌 문화가 있었다.

내가 직접 퇴사하기 전까지는 참 뭐같은 문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경험해 보니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참 도움이 될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의 이유가 업무때문인지, 사람때문인지 그렇다면 누구인지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퇴사를 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이 있는지, 있다면 계획의 실행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의 퇴사 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은 고쳐졌으면 좋겠다라고 개인적인 이야기 정도는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렇게 퇴사사유를 이야기하고, 대표님방에서 나와 자리정리를 했다.

10년을 다니다보니 별의별 물건들이 다 나왔다. 얼마전에 구입한 핸드폰 충전케이블이 10개나 나왔다. 그리고 헤어진 여자친구와 찍은 사진들도 보였다. 회사를 그만두는데, 내 추억을 정리하는 것만 같았다.

주변 동료들은 부러운 눈빛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 눈빛에 일일히 답하지 않았다. 그만두는 마당에 감정소비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길로 사무실에서 나와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나는 퇴직자가 되었다.

동시에 나는 예비창업자가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