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6월 초에 잠시 미국 시카고에 머물 기회가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도시라는 별명과 다르게 시카고의 날씨는 따뜻하고 화창했다. 여름 특유의 후덥지근한 날을 걱정했지만 공기의 움직임은 갓 마른빨래처럼 가벼웠고 활짝 웃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기 딱 좋게 청량했다. 이런 날씨라면 어디든 기쁘게 다닐 수 있을 거라고 들뜬 마음을 안고 시내로 산책을 나섰다.
거리는 껌 하나 붙어있지 않아 깨끗했다. 그러나 잎이 무성하게 우거진 가로수 아래를 지날 때는 다소 긴장해야 했다. 보도블록에 정체 모를 검은 물질이 발 디딜 틈 없이 쏟아져 굴러다니고 있었다. 가로수의 열매인가 싶어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그것들은 다름 아닌 매미였다. 7년 동안 땅속에 있다 나와, 한 여름만 맴맴 울다 사라지는, 그 매미였다. 설명에 따르면 이상기후로 이른 여름이 시작되는 바람에 땅 속에 있던 매미들이 세상에 급히 나온 거라고. 성충이 될 충분한 시간을 다 보내지 못하고 서둘러 나온 매미들은 대부분 크기가 작았다. (엄지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크기였다) 절정의 여름에 등장해 초록을 만끽하며 여름을 노래하고 싶었을 매미들은 나무에 잠시 머물고 짧게 울다 길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것도 수천, 수만 마리가 매일 설익은 계절에 취해, 다 울지도 못한 채.
그곳에 머무는 동안 지름길이었던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대신 다른 블록으로 돌아서 다녔다. 왠지 내 머리 위로 젊은 매미가 툭-하고 떨어질 것 같았다. 아무리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음을 떼어도 매미를 밟고 말 거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일단 벌레라는 존재가 주는 일차적인 공포와, 기온 몇 도 차이로 와르르 쏟아지고 마는 개체들의 죽음에서 느끼는 당혹감, 수년간 생존을 위해 촘촘히 준비하고 견뎌낸 작은 것들의 일생이 허무하게 강제 종료 되고 마는 잔혹함은 거리를 걷는 내내 마주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그늘을 따라 난 산책로에 매미 떼가 쌓이는 동안 뙤약볕을 걸으며 나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도망치듯 성미 급한 계절을 뿌리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퇴근 시간에 잠시 근린공원 산책로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바닥을 살피며 걸었다. 다행히 객사로 요절한 매미는 없었다. 그러나 난생처음 보는 아주 작고 미세한 드론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방금 그게 뭔가 싶어 주변을 돌아보니 하나가 아니었다. 일단 무시하고 버스에 올라 타 창밖을 바라보는데, 투명한 유리 너머로 검은 물체가 보였다. 어라? 날아다니는 개미처럼 생긴, 두 마리가 쌍둥이처럼 서로 꼭 껴안은 채 위태롭게 창문에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머지않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아까 만난 최첨단 마이크로 드론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 녀석들은 이미 꽤 유명했다. 이름마저 힙-한 '러브 버그'. 둘이서 꼭 껴안고 다니니 붙여 준 이름인 듯하다. 신기해하는 내게 지인이 설명을 덧붙이는데.
"기억 안 나세요? 지난번 산책하러 봉은사 갔을 때 날아다니던 벌레요."
순간 스쳐 지나가는 지난달의 기억. 연등행사로 준비가 한창인 사찰을 방문해 잠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던 날, 5월인데 한 여름처럼 벌레가 많다며 신흥(?) 벌레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특히 짝을 지어 다닌다는 벌레는, 한 번에 두 마리가 달려드니 단연코 모두가 기피하는 1순위였다. 하나가 아닌 둘이어서 더 낯설고 위협적이라는 점, 모기처럼 은근슬쩍 날아와서 약을 올리는 유형과 다르게 사람 주변을 느긋하게 왔다 갔다 하며 손을 뻗어 날리다 보면 쉽게 접촉하거나 충돌한다는 점은 더욱 유별스러웠다. 그들의 이름처럼 하루 종일 둘이 붙어서 짝짓기를 한다는 점은 신기하다 못해 기괴했다. 짧고 굵게 살다 가는 '하루살이'도 '번식' 보다는 '살이'에 초점을 맞추며 마음껏 날아다니는데, 주어진 수명을 짝꿍과 함께 보내는 삶이 어딘지 짠해 보이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요란하게 짝짓기를 하는 녀석들을 봉은사에서 만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속세를 떠나 수행 중인 스님 주변을 맴도는 녀석들의 가열찬 비행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게 했다. 도저히 봐줄 수가 없음에도 불살생 계율을 새기며 차마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내 모습 또한 짠했다. 녀석들을 사찰 밖으로 유인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단념했다. 사랑의 비행 중인 녀석들이 혹시라도 내 옷깃을 스치며 보도블록에 불시착이라도 한다면 나는 또 한 번 아끼는 산책로를 잃고 녀석들을 매미와 함께 가슴에 묻어야 할 테니까.
그렇게 '여름이면 떠오르는 가장 싫어하는 것 목록'에 러브 버그를 올렸다. 기괴하고 유별나며 대책 없는 벌레. 나는 녀석들을 혐오했고 그들과 쉽고 확실하게 이별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검색어는 대략 이랬다. 러브버그를 유인하는 기묘한 향기, 단기간에 많은 효과를 주는 초강력 살충제, 등등.
녀석에 대한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러브 버그는 녀석의 별명이며 이름은 붉은등우단털파리**다. (이름도 길고 난해한 너란 녀석) 중국, 대만, 일본 등 한국과 인접 국가에 주로 서식하는 이 녀석은 수명이 3일에서 최대 7일인 파리였다. 녀석을 세세히 묘사한 그림과 보조자료를 읽으며 녀석의 독특한 습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전히 달갑지 않았지만 잠시 왔다 떠나는 일주일 인생이라 하니 어쩐지 녀석들의 모습이 조금 슬퍼 보였다. 참 얄궂게도, 지식은 얄팍한 감정 우물에 물을 채우듯, 내가 놓친 부분을 속삭이며 넌지시 일러주기도 한다. 이를 테면, 러브 버그는 본래 낙엽을 분해하여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익충*이며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하며 의도치 않게 인간의 일상에 자리 잡게 된 것뿐이라는 설명이 그랬다. 별 다른 의도 없이 그저 먹어야 할 벌레들을 먹고 본인들의 생을 다음 자손에게 넘기는 일주일의 대장정에 내가 잠시 끼어든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수많은 종과 개체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나는 녀석들에게 이로운 존재일까. 누군가의 해로운 존재가 되길 원치 않아 나무가 없는 먼 길로 돌아가고, 냉큼 집었던 살충제를 다시 진열대에 되돌려 놓지만 여전히 답을 알 수 없다. 벌레가 싫어 피해 다니는 나와 인간에겐 관심 없는 러브 버그가 끊임없이 마주치는 건, 어쩌면 그저 우리가 무더운 도시에 갇혀도 저마다 지키고 살아내야 할 여정의 일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거대한 계절 앞에서 각자의 몫을 감당하는 일만큼 고귀한 일은 없어서, 존재의 가치와 서로의 손익을 재는 건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점점 빨라지는 여름의 리듬만큼 누군가의 땅은 타 들어갈 듯 뜨거워졌고 누군가의 일생은 순식간에 끝났다. 매미의 깊은 단잠을 깨우고 러브 버그의 여름 비행을 위협하며, 작고 잔잔하며 단단했던 그들의 일상을 깬 건 우리가 무심코 돌려놓은 계절의 시계일지도 모른다. 사랑스럽지 않아도 해충은 아니라는 지역구 안내문구처럼, 사랑스럽지 않아서 마구마구 미워했던 마음을 황급히 접어 넣었다. 우리는 충분히 뜨겁기에, 더 이상 펄펄 끓어오르지 않아도 된다고 나에게, 그리고 여름에게 말해본다. 시작은 불시착일지라도, 모두에게 해롭지 않은 여름이길 바란다.
*출처: https://news.seoul.go.kr/welfare/archives/553791
**출처: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4/06/24/IHX3OPRMFFHHFOHNXOZ573FEM4/>
표지 사진: Unsplash의kristin todoro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