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복숭아를 왜 샀을까
과일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먹을수록 물배가 차고 입안과 손가락에 묻은 달곰하고 끈적거리는 질감 때문에 당장 닦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는지, 과일의 상큼함을 오롯이 즐기지 못한다. 이런 내가 답답한지 손수 껍질을 깎아 입안에 넣어 주고 예쁜 포크를 손에 쥐여 주지만 몇 입 먹고 물러나는 게 나의 최선이었다. 나에게 과일만 먹다 죽은 귀신이 들러붙었냐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아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마트에 가도 과일 판매대는 즐겨 찾지 않았는데 부쩍 발길이 닿는 날이 늘었다. 어떤 특정 과일의 짓(?) 일지 모르는, 달곰한 과일의 향이 나를 자극하여 급기야 걸음을 멈추고 과일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 혼자 먹겠다고 과일을 사는 날이 올 줄이야. 혹시 과일을 좋아하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게 다 복숭아 주변을 맴돌던 파리 때문이다.
과일 판매대에서 천천히 지나가고 있는데 파리 한 마리가 고속 비행 중이었다. 일반적인 파리와 다르게 녀석은 속도가 빠르고 착륙과 이륙의 간격이 매우 짧은, 단거리 초고속 비행을 하고 있었는데 하필 그 지점에 아주 잘 익은 모습의 복숭아들이 가득했다. 제철 과일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탐지 능력까지 가진 듯한 이 단거리 전문 초고속 비행 동물은 복숭아를 골라가며 앉았다 날았다 반복하는데 그 날갯짓이 마치 복숭아를 간지럽히는 것처럼 여간 부산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손을 휘 흔들며 파리를 날려 보내려고 애썼다. 저리 가. 이렇게 네 맘대로 마구 맛보기야? 그날따라 복숭아가 왜 그리 아기 볼처럼 연약해 보이던지. 말 못 하는 아기를 공격하는 파리는 또 왜 그리 거대해 보이던지. 육중한 녀석의 시퍼런 몸통이 햇빛에 반짝거릴 때마다 복숭아는 약자, 파리는 강자라는 전형적인 위계를 의심할 필요가 없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복숭아를 지켜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파리로부터 한 상자의 복숭아를 지켜냈다.
파리에게 줄 수 없어 사 온 복숭아는 말랑말랑, 물컹물컹한 황도였다. 우리 집 꼬마는 '딱복' (과육이 단단한 복숭아)이 아닌 '물복'(과육이 물렁한 복숭아)여서 너무 좋다며 단숨에 한 개를 해치웠다. 어찌나 맛나게 먹는지 나도 한 개를 같이 먹었다. 아기 볼 같던 복숭아는 없고 제철을 만난 꿀 덩어리만 보였다. 아마도 내가 맞서 싸웠던 건 여름의 포식자, 파리가 아니라 여름의 과일이라는 이유로 화풀이하려는 내 안의 못난 미움이었을지도.
그러니까 내 말은, 이게 다 복숭아 주변을 맴돌던 파리 때문이지만, 또 가끔은 여름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고. 그렇다고.
(표지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