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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03. 2024

오기와 객기는 사라지지 않을까?

스도쿠의 전문가>와 <익스트림> 사이의 격차가 빚은 현상


오랜만에 수면시간을 대폭 줄어서인가? 

살짝 어지러운 듯 맹한 상태가 가끔 나타났다. 

십 년 전까지는 4시간 수면이 당연했는데, 

이게 무슨 현상인지 모르겠다. 


그만큼의 세월이 흘러서 몸이 노화된 여파? 

아니면 엄살? 

온종일 멍한 상태도 아니고 한가할 때만 멍해지는 것을 

마치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니 우습다. 




건강 염려증이 생겼을 수도 있고, 

일상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 보니 

정신 상태가 나약해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하루 수면을 7시간 정도로 유지하다가 

갑자기 수면이 4시간으로 줄어들어서 나타난 

수면 부족 현상일 수 있다. 



이틀 연속 4시간 정도의 수면은 건강에 이롭지 않을 수도? 

수면이 갑자기 줄어든 이유는 게임 때문이다. 

스도쿠 게임을 <전문가>로 했었는데 <익스트림>으로 바꾼 게 원인이었다. 

스도쿠 게임에서 <전문가>와 <익스트림>의 차이는 엄청났다. 

<전문가> 게임이 시시한듯해서 <익스트림>에 도전했는데 

성공률이 오십 퍼센트에 머물렀고, 

그나마 문제 풀기에 성공했을 때의 속도도

 <전문가>를 풀 때보다 거의 두 배나 걸렸다. 


그래서 게임을 계속하게 되었다. 

오기 때문이었는지 객기였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스도쿠를 풀지 못하고 게임이 끝나자 약이 올랐다. 

짜증이 났을 수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데도 쉽게 게임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경험을 

오랜만에 했다. 




스도쿠 게임을 오전 시간이 아닌 밤으로 아예 바꾸었다. 

오기인지 객기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놈 때문에 

일상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면 안 되니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나름대로 

자기 관리를 잘하는 편에 속한다고 믿었는데 

스도쿠 게임 하나로 다시 불신? 

아니 <자기 관리를 잘한다는 믿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자기 관리는 무슨 자기 관리,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이렇게 쉽게, 한순간에 마주했다. 

노력하고 성숙해졌다는 믿음은 과연 허상일까? 


죽는 순간까지 

미숙한 자아와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제는 새벽 두 시를 조금 넘긴 시간까지 

스도쿠와 대결을 하다 지쳐 잠들었다. 

그 여파로 오늘의 정신 상태가 약간 흐릿?




“늙는 건 육체뿐이지. 

이따금 씩 백묵이 부러지듯 내 손가락이 부러지지나 않을까 

겁이 날 때가 있어. 

그러면서도 정신은 늙지 않고 

또 그렇다고 별로 지혜로워지지도 않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 발췌



지혜로워지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 더 발전한 상태이길 매일매일 바라면서 노력했는데, 

어떻게 게임 하나로 쌓아 온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말인가. 

아마도 내 안에서 아직도 살아 숨 쉬는

<오기>와 쌍둥이 <객기>가 다시금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스도쿠 완전 정복>이라는 책을 쓸 것도 아니면서, 

스도쿠에 매달리기 시작한 이틀, 

삶에 도움이 될 일이 전혀 없는 

<오기>와 <객기>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다시 <전문가>로 게임을 풀면 될까? 

2분대로 풀었다고 기뻐하면서 

하루를 상쾌하게 맞이하기엔 그게 딱 좋을 것 같긴 하다.




그 쉬운 해결 방법을 알고 있는데, 

왜 마음이 그쪽으로 다가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 

이미 <익스트림>에 도전했고, 

또 지나쳐 온 과정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어리석음?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과 마주한 채 

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또 스도쿠를 했다. 

그것도 <익스트림> 단계로. 

게임을 하는 동안의 시간은 정말 빨리 흐르기 때문에 

거뜬하게 모든 역을 지나쳐서 집에 도착했다. 




“노인이 지혜로울 거라고, 생각하는 건 

엄청난 착각이다. 

지혜로워지는 게 아니야, 다만 신중해질 뿐이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 발췌



이틀 연속으로 일상생활이 헝클어지는 

태도의 망가짐을 경험했으니, 

이젠 결단력 있게 스도쿠를 <전문가>로 내려서하거나 

아니면 아예 게임을 중단하거나? 

아! 그러나 중단하기엔 지금까지 공들인 시간이 아깝다.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예서 말수는 없다는 

시의 한 구절도 떠오르고, 

칼을 뽑았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자르라는 

속담도 떠오른다. 

결정적으로 <오기>나 <객기>를 잠재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익스트림>을 깔끔하게 

오 분 안에 풀어내는 기록을 딱 열 번 성공하면, 

그러면 만족할까?




이런 식으로 사고하다 보면 중독이 되는 게 아닐까?


중독!


게임, 놀음, 알코올, 바람, 무엇이든

중독이 되어가는 과정은 이처럼, 

타협에 타협을 거듭하면서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순간 아주 쉽게

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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