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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04. 2024

마음의 감기증세?

미술계의 문화행사가 활발할 때면 불현듯 마음의 감기증세가




오늘부터 시작한 서울의 미술장터인 코엑스,

마음은 벌써 그곳을 향했다.


미술장터가 아니더라도 사람으로 분비는 그곳이 

이제는 명실공히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는 명소로 등극한 게 

벌써 3년. 

첫 해는 <키아프와 프리즈가 손잡은 게> 의아했었다. 

키아프와 프리즈가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미술작품 시장을 오픈한다고? 

그리고 그런 우려는 역시 확연하게 보였었다. 

프리즈는 바글바글, 키아프는 한산했었다. 

올해는 조금 다른 풍경일까? 기대된다. 

제일 궁금한 것은 고 서세욱 화백의 수묵화를 

그의 아들들인 서도호 미술작가와 서을호 건축가 형제가 재해석한 작품을 

LG 투명 올레드 TV로 선보인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내일이나 갈 수 있는 표라서, 

오늘은 궁금증만 가득한 날이다.



곡식이 익어가는 계절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문화행사 덕에 

가을이 한층 풍요롭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자각 증세도 일어난다. 

생각한 것을 표현해서 결과물을 

척척 내놓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지금 무얼 하는 것이지? 

와 같은 현타? 


부지런하지 못하면 

끈기라도 있어야 결과물이 쌓이는 법인데 

난 그 둘을 모두 상실하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과거에 작업했던 것들조차 

외장하드에서 꺼내지 않고 묵혀두었다. 

버리지도 못하고 꺼내지도 않는 

내 손에서 태어난 작품들이 가엽다.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인간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한 것, 

자신에게 공통적인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발췌



내가 보유한 외장하드는 총 다섯 개다. 

그것 중 덩치가 가장 큰 놈이 가장 오래된 외장하드이고 

외장하드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용량은 점점 커지는 아이러니가 외장하드라 이름 붙은 물체에 있다. 


가장 오래된 외장하드 속 작품들이 풋풋하고, 

신선한 생각에서 의욕적으로 탄생한 작품들이고 

이후의 외장하드에 속한 작업은 모두 

지식이 쌓이면서 신선도가 떨어지고 

관념이 조미료처럼 듬뿍듬뿍 추가된 작업물들이다. 


언젠가는 그 아이들을 꺼내놓아야지 

생각하면서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게으름 탓이겠지?




주변인 중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친구들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그들이 성장하는 동안 난 무엇을 하면서 산 것이지? 

출발지점은 같았는데, 

그때는 같은 것을 고민하고 같은 종류의 작업을 했는데, 

어느새 그들과 나의 거리는 아주 멀어졌다. 

계기가 선명한 것도 아니고 시기도 불분명하다. 


나는 슬그머니 그 무대에서 내려와 

다른 곳을 배회한 듯하다.

마치 이론가가 된 듯이 점점 더 작업하는 일이 

힘들고 게을러지기 시작했던 것도 

배회가 길어지면서 나타난 증상이었다.



“무거운 짐이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전혀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이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발췌




가을을 타는 사람처럼, 

키아프 서울이나 프리즈 서울과 같은 장터가 시끌벅적할 때면 

한 번씩 심리상태가 묘해진다. 


후회인 듯 후회가 아닌,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물건처럼 

그렇게 불현듯,

깊은 무의식을 헤엄쳐서 올라온 감정이

의식을 모두 점령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감정이 싫지 않다. 



꿈틀꿈틀 

온 마음을 헤집는 순간순간

의식하지 못했던 개념을 불러내는

 자극이 되어주기도 하고 

아직 맞이하지 않은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므로.


그리고, 

 아직, 꿈을 놓아버린 것이 아니라는 자각?

느낌을 벼리고,

관찰하는 힘을 기르는 오늘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어쩌면......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


-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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