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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08. 2024

새벽길에서 줍는 생각

무거움은 가볍게, 가벼움은 무겁게


지난 3월에 

갑작스럽게 남편을 여읜 이종사촌의 집에서 

사촌 여자들만의 <번개> 알림이 카톡으로 왔다. 


출근한 남편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이승을 떠났으니,

아직 동생이 많이 힘들 수 있을 듯해서 나도 흔쾌히  <번개>에 합류했다.

친척들의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 동생부부의 금슬이 다른 집보다 좋아서

모두의 부러움을 사곤 했었고,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아주 건강했던 사람이고,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벌어진 일이라

당시, 

부고가 카톡으로 왔을 때 스팸인 줄 알았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쉽게 잊을 수는 없겠지만, 

몇 달이 흘러서인지 

동생은 안정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마련이다라는 말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살다 보니 그 말은 진리 같다. 

더구나 동생은 전업주부가 아니고 전문직 종사자라 

경제적인 타격도 전혀 없다. 

사회생활을 지속해야 하므로 슬픔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을 수 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에 무디어졌을 수 있다. 


서로 많이 웃어서, 웃다 보니 분위기가 가벼워졌던 것인지

모임이 무겁지 않았다. 

먹고, 마시고, 수다를 떨면서 그렇게 

우린 죽음을 상기할만한 그 어떤 이야기가 툭 튀어나올까

두려워하지도 않고 

아주 유쾌한 대화, 

서로의 일에 대한 것과 아이들의 이야기만 주고받았다.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서울역이 있는 교통이 좋은 동네라

오며 가며 들릴 수 있는 곳인데도 

쉽게 가지 못하고 살아서 동생에게 미안했었다.

몇 개월만의  사촌들 모임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자정을 넘겼고, 

여자들만의 모임이라서 모두 그 집에서 잤다. 


<일종의 파자마파티>




동대문시장이 인근이라는 생각이 들자 뜬금없이 새벽시장이 그리웠다. 

동생들이 씩씩하게, 행복하게 살길 기도한 후 

동생들이 깨기 전에 집을 나와 새벽시장으로 향했다. 

도시의 새벽공기, 건물의 불이 모소지 꺼져있는 게 아니라

새벽인지 저녁인지 분간도 어려운 거리,

타박타박 걸어서 택시정류소로 가서 택시를 탔다.


새벽시장을 나처럼 그리워하는 사람은 많을까? 

내가 새벽시장을 좋아하는 까닭은 선명했다.

이곳엔 게으름이 없고, 나른함이 없다.

이곳엔 슬픔이나 괴로움이 끼어들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

새벽시장은 다양한 매력과 생동감이 넘치는 장소다.



20대와 30대 초반까지는 쉽게 새벽시장을 향했었다. 

심란할 때, 

감아놓은 태엽이 모두 소진되어 시계가 멈추었을 때, 

우울할 때마다 새벽시장엘 갔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도 물건을 사러 간 것이 아니라, 

활기찬 시장의 모습에서 자극을 받고 싶어서 갔었다. 


새벽시장을 다녀오면 그때부터 

다시 생기, 잘 산다는 의미, 꿈, 소망이 시간의 분침 사이를 채워서 

다시 싱싱해지곤 했었던 기억이 그리움을 낳았을 것이다.

오늘은 지치지도 않았고, 

꿈을 잊거나 일상이 느슨해지지도 않았는데, 

그리움이 그곳으로 가게 했으니 얼마나 강력한 그리움이었을까? 




무엇인가를 사야겠다는 목적 없이 

시장에 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인지 

시장에 도착했을 땐 빈손이었던 사람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사람보다 물건을 포장한 보따리가 더 크게 눈에 들어왔고,

사람들의 손엔 무언가가 들려있는 장면을 봤다. 

그것도 한 보따리도 아니라 양손이 무겁게. 



대부분이 소매상들이고,

장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시간이라 

짐을 옮기는 사람도 바쁘게 움직였다. 

열심히 생업에 몰두하는 사람들 틈에서 혼자 한가하게 구경하는 

구경꾼인 게 무안하기도 해서

서둘러서 사람들 사이사이를 비집고 걸었다.

무안한 건 소심한 내 성격 탓일 수 있다.


“일이란 것은, 마치 막대기와 같아서 양 끝이 있는 법이다”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 발췌


열심히 산다고 믿다가도 새벽시장엘 다녀오면 

반성하는 부분이 많아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혹시라도 정신적인 노동이 

육체적 노동보다 쉽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는 것일까? 


아이러니는, 정신 노동자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노동의 대가로 받는 액수는 형편없다. 

<통계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닌 단순한 내 생각> 


“<하루 중에 제일 추울 때는 해가 뜨기 직전이야> 

부이노프스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밤새껏 내려간 기온이 마지막 고비에 이를 때거든>”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 발췌


동생을 방문했고, 새벽시장까지 다녀온 

값진 주말이었던 뿌듯함으로 채운 기념으로

맥주 한 캔을 방금 비웠다. 

음주 생활과는 거의 결별에 가까운 바른생활의 상태였는데, 

어제의 술잔에서 스며든 취기가 남아서 

해장술을 필요로 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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