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코넛 Sep 10. 2024

가곡 수선화의 노랫말처럼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하늘의 위를 나는




세잔의 시선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로 엉켰던 색을 풀어 순색으로 만든 후 

다시 동종 색을 덩어리 덩어리로 분류했다. 

아주 잠시지만, 

나는 하늘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남겨지지 않고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작업은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이런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글로 남긴다. 

이렇게라도 잡아두어야 

내가 만난 대상을 관찰했던 목록에도 남고 

또 기억에도 오래 남을 듯해서다. 



장식들을 몸에서 떼어냈던 여름 내내, 

방학 내내 방치했던 손목시계를 

다시 손목에 채우고 다니려고 꺼냈는데 

시곗바늘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망한 시계를 부활시키기 위해 시계를 산 곳으로 갔다. 

점심 시간대가 조금 지났음에도 점포에는 점원이 한 사람뿐이었다. 

그 점원은 응대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 점원과 대화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도 보였다. 

나는 시계들을 구경하다 한쪽에 의자가 있기에 자리에 앉았다. 

점원과 고객이 주고받는 소리가 들리는데, 

왠지 고객이 시간만 질질 끄는 대화같이 느껴졌다. 

그 사람 눈은 뒤를 볼 수 없으니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아서 

느긋하게 점원과 대화했던 것이겠지만, 

삼십 분을 넘겼다. 


해도 너무한다는 불쾌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떤 사람이 기대했던 모습과 다르고 

미리부터 갖고 있던 관념과 어긋나는 건 좋은 일이죠. 

하나의 유형에 속한다는 것은 

그 인간의 종말이자 선고를 의미하니까. 

만약 어떤 범주에도 넣을 수 없다면, 

또 그에게 별다른 특징이 없다면 

그는 자기에게 요구되는 것의, 절반은 성취한 셈이오. 

스스로에게서 자유롭고 

또 불멸의 씨앗을 획득한 것이니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서 발췌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내 손목시계는 부활했다. 

밥만 주면 다시 정상이 되는 시계가 기특했다. 

점원에게 어이없는 말을 늘어놓으면서 

모두의 시간을 뭉텅뭉텅 잡아먹은 고객에게 

조금 짜증이 올라오긴 했지만 잘 넘어갔고. 

계획대로 내 시계는 부활했으니 

짜증이 조금 났었던 일은 말끔하게 털어내야지.

짜증을 표출하지 않고 

참은 건 참 잘한 일이야 하면서 차창을 보았다. 


눈이 부신 날이다. 


햇살이 차창의 유리를 투과하면서 유리 두께의 틈으로 생긴 

프리즘의 색이 아름답다. 

프리즘은 움직이면서 형태를 바꾸고 다시 바꾸기를 반복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면 적어도 세상은 재밌는 장소가 된다. 

내가 마주하는 모든 것이 주는 

선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어디쯤 와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여유도 선물이고, 

구름 한 점 없는 텅 비어있는 하늘에도 

많은 색이 숨어 있음을 관찰하는 시선도 선물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의 무료함을 이해해서 

사소한 불협화음도 만들지 않는 배려도 선물이다.



“인류의 드높은 상징은 자신을 희생하는 설교자가 아니라 

채찍을 든 서커스 조련사일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수 세기 동안 인간을 동물 위에 올려 

높이 데려온 것이 몸뚱이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점입니다. 

무방비의 진리는 물리칠 수 없는 법, 

그 본보기로서의 매력이지요. 

지금까지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계율에 포함된 도덕적 금언과 규칙이라고 여겨졌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일상 속에서 잠언을 끌어내 말하고 

그렇게 일상생활의 빛으로서 진리를 설명한다는 점입니다. 

그 기저에는 필멸의 존재들 간의 소통은 불멸한다는, 

그리고 삶은 그것이 의미심장하기 때문에 

상징적이다라는 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서 발췌



소강상태처럼 고요한 날이다.

자극적인 순간들이 적은 날이라 고요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지 

일상은 계획한 대로 이행했다. 

계획대로 살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불청객이 없는 하루가 얼마나 큰 복인지를 떠올리면서 


어제 읽다가 멈춘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 / 전영백 / 한길사>을 다시 펼친다.





작가의 이전글 펑크, 식물 펑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