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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11. 2024

사소해서 자주 까먹는 일들

나에게는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겐 중요할 수도




산책길에서 바닥에서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도토리를 발견하고 반가워서, 

주변을 돌면서 도토리를 몇 개 주워서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숲에서 벗어나는 입구에 도로 살며시 내려놓았다. 


호주머니에 넣을 땐 기념품처럼 주운 것이었는데, 

막상 산책을 끝내고 숲을 벗어날 즈음에

국립공원을 방문했을 때 

공원 이곳저곳에 세워 둔 팻말에 쓰여 있던 문구가 떠올랐다. 



되짚어 생각하니 다람쥐의 양식을 

내가 빼앗아가는 형국이라는 느낌이 따라왔다. 

의식하지 못한 채로 누군가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일종의 죄책감이 생각 끝에 매달렸고,

나의 사소한 취미 혹은 행동 하나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은 

내가 알고 있는 관념의 범주를 뛰어넘을 수 있음으로 이어지자 

나의 무지로 발생했거나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은 

또 얼마나 다양하고 많을까를 생각한 날이다. 




내 것과 네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었던 어렸을 때는 

방과 후 집으로 오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남의 텃밭에서 채소나 과일 등을 따거나 뽑아내거나 했었다. 

배가 고프거나 먹고 싶어서가 아닌 

단순한 재미였다. 


텃밭을 일구는 사람에겐 

채소 하나 과일 한 개가 소중한 재산이라는 걸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었다. 

지금 되돌아보니 

그와 비슷한 다양한 행동이 놀이로 이어졌었던 기억이다. 

노동이 힘들다는 인식도 없었다.

많은 것들이 추상이라 행동 하나하나에 

죄의식도 없었던 듯하다. 



<서리>라는 문화가 존재했었고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의 장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용인했던 시절이었으니 

들켜도 겁내지 않았고 

주인도 새 때들을 쫓듯이 소리 한 번 지르는 정도에 그쳤었다. 


어제 <탐정들의 영업비밀>에서 

어떤 분이 6년이나 정성 들여 키운 수국을 훔쳐 간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는 

의뢰를 받고 탐정이 범인을 찾아 나선 것을 시청했을 때 

수국을 훔친 부부는 절도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꽃가게에서 사도 비싸지 않은 꽃이라 

그분들이 훔친 이유가 궁금했으나 

다음 주에나 그 사연을 방송한다.




“모든 문제는 사람들이 인간을 사랑 없이 대해도 되는 

상황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점에 있지. 

하지만 그런 상황은 없어. 

사물은 사랑 없이 대해도 돼. 

나무를 베고, 벽돌을 만들고, 

쇠를 담금질하는 것은, 사랑 없이도 돼. 

그런데 사랑 없이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되지. 

조심성 없이 꿀벌을 대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야.”


- 레프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발췌



꽃 도둑, 단어로 미루어보면 

어렸을 때 남의 집 텃밭에서 키우는 

채소 혹은 과일을 슬쩍 서리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그분들은 새벽 시간을 이용해서 

만반의 준비를 한 후 부부가 

수국을 뿌리까지 뽑아 간 일은 범죄로 느껴졌다.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현재 사회의 집단의식이 변한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고, 

삶의 경험에서 인식의 확장과 성장이 판단에 작용했을 것이다. 

소셜 미디어 계정에 아주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지만,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체크를 하면서 살고, 

밤엔 넷플릭스를 통해 이런저런 프로그램 시청도 하는 이유는 

시대성. 시대의 가치변화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기 위해서다. 




티브 시청이 백해무익하다는 이야긴 옛말이다.

시청하는 게 전혀 없는 사람은

대화에 참여도 어렵고 이해력에도 문제가 많다. 

또한 세대 간의 격차도 커지므로, 

티브이 시청은 장점이 단점보다 많지 않을까?



함께 동시대 정신을 공유하는 일은 중요하다. 

내가 공원의 팻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도토리를 집으로 가져왔을 것이고, 

그 도토리는 집 어딘가에서 바싹 말랐다가 버려졌을 것이다.

자잘한 잘못을 잘못이라는 인식도 하지 못한 채 

잘못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졌으니 

다음엔 큰 의식 없이도 잘못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사소해서, 아주 사소한 일이라서,

기억으로 남지 않았을 이런 종류의 일들이 일상에 많을 수 있다.

사소한 일에서 무의식으로 저지르면 죄도 사소할까?


어둠을 흔들면서 비가 내린다.

이 비는 가을을 풍성하게 수놓기 위한 전주곡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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