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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17. 2024

말로 하지 못한 칭찬의 글

고맙고 감사하고 그리고 미안해


석연치 않은 감정, 혹은 미안함처럼

일상에서 잘 나타나지 않았던 감정과 마주한 날은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감상한다. 

그녀의 많은 작품 중에서 왜 이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이유? 꼭 집어서 말하긴 어렵지만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섞여있는 감정들을 분류하기 쉬워서?

정도로 말할 수 있다.



한가위를 잊지 않고 아들이 

이른 아침에 전화해서 두런두런 한 시간 동안 통화했다. 

런던의 풍경스케치를 전해주었고, 이야기 중에

사진도 덤으로 보내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한가위를 함께 보냈을 때는 둘이서 <고스톱>을 해서 

청소나 설거지 당번 정하기 등을 했었던 

기억과 스도쿠게임을 아들이 퍼 올렸다. 




스도쿠 게임이 온라인으로 출시된 걸 

가르쳐 준 사람도 아들이고

기회가 될 때마다 스피드 게임을 했었다. 

각자의 핸드폰으로 동일한 게임을 누가 먼저 끝내는지 

시합하는 형식이었는데,

그 당시엔 우리 둘 다 <중급>을 풀면서도 한 시간을 훌쩍 넘겼었다. 

그 이후부터 나는 매일 30분 정도 스도쿠 게임을 했으므로 

현재 <익스트림> 단계이지만 

아들은 게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바쁘게 산다.




집집마다 부모와 자식 사이가 다르겠지만,

나와 아들의 관계는 아들이 너그럽고 자상해서

부족한 엄마를 잘 감싸주는 편이다.

엄마가 아들에게 칭찬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아들이 엄마를 칭찬한다.

무언가가 거꾸로 된 느낌?


대화가 끝나고 난 후에야 

<아, 오늘도 나는 아들에게 칭찬을 하지 못하고

칭찬만 많이 들었구나>하고 반성한다.



 ”하루하루의 날들이 얼마나 길면서도 짧을 수 있는지 

나는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하루는 지내기에는 물론 길지만, 

하도 길게 느러 저서 결국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쳐나고 말았다. 

하루하루는 그리하여 제 이름을 잃어버리는 것이 없다. 

어제 혹은 내일이라는 말만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발췌


혼자 사는 엄마가 외로울 것을 감안해서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아들은 

멀리 떨어져 사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나와 놀아준다. 

팀뷰어를 통해서 서로 텍스트로 된 유머 중 

누가 더 재밌는 유머를 발견했는지 교환하기도 하고, 

때로는 디스코드를 통해서 

같은 영화감상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자상한 성격의 아들이라 

때론 친구같이 많은 것을 공유하는데 

가끔 승부 욕이 강한 아들의 자존심을 나는 슬쩍 건드리곤 한다. 

내가 왜 그러는지 아들아이는 알고 있는 듯하다. 

맞장구치면서 약이 오른척하지만, 

통화가 끝나고 나면 아들이 나와 놀아주려고 

그렇게 반응했다는 느낌이다. 


아들이 나보다 한 수 위다.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토록 오래전부터 나를 따라다니던 

그 소리가 멎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있었다.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발췌 


추석, 한가위,

한국의 명절을 잊지 않고

바쁜 와중에 시간 맞춰서 전화한 아들에게 

칭찬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죄책감으로

오늘은 글로, 아들에게 충분히 감사해한다고,

네가 나의 아들이라서 감사하다고,

칭찬해 줄 게 많은데 칭찬에 인색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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