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다 Aug 24. 2017

인생은 넘어지고 그 반동으로 다시 일어서는 춤과 같아

[영화 | 프란시스 하 FRANCES HA]

지방에서 나고 자란 내게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은 막막한 곳이었다. 외국을 떠돌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얻은 첫 직장에서 제공해준 사택에서 다른 이들과 방을 나눠 썼다. 그렇게 스물여섯의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한 몸 기꺼이 누일 곳을 마련하기에는 벌어둔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서른이 되어 물어물어 알게 된 먼 사촌의 집에 방 한 칸을 얻었다.


세상 무엇이든 내 마음먹기 하나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 하나를 믿고 서른이 훌쩍 넘도록 살아왔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려 애썼다. 이왕이면 나도 행복하고 당신도 행복한 삶을 살아내고자 분투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 나를 돌이켜보니, 나 참 대책 없이 순진했구나 싶다.



영화 ‘프란시스 하(Frances Ha, 감독 노아 바움백)'를 보면서 나는 내내 프란시스를 무시했다. 스물일곱 살이 먹도록 친구 집을 전전하는 모양새 하며, 자존심에 못 이겨 거짓말을 하고 주어진 기회를 내팽개치는 모습에서 참 치기 어리다 생각했다. 집주인의 잠자리 상대로부터 ‘늙어 보인다'는 이야기나 듣고, 월세가 없어 이미 졸업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 어린 애들하고 섞여 있는 모습이 참 후지다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게 나였다. 가슴 속에 무언가 열망은 있으나, 이를 속 시원하게 단번에 풀어내기에는 다소 능력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리저리 비벼댈 마땅한 언덕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자존심에 거짓말을 하거나 콧대만 높이곤 한다.


하지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는, 스물일곱 프란시스. 아무래도 지하철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중인 듯 하다.


그런데 말이다, 영화를 다 보고 하루 이틀 지나고 나니 나보다 프란시스가 낫다는 걸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업신여겼다가, 조금 지나 '나' 같다고 여기게 된 프란시스에게 나도 모르게 묻고 있더라.


프란시스였다면


2014년 7월, '비긴어게인' '가디언즈오브갤럭시' '군도' 등 다른 영화들을 보느라 미쳐 못 보고 뒤늦게 DVD로 만난 영화 '프란시스 하'를 소개한다. (언제나처럼 영화 결말도 포함되어 있다. 알고 봐도 괜찮을 영화다만)



프란시스의 첫 번째 집 |
682 Vanderbilt Ave, Brooklyn, NY 11238


뉴욕에 사는 27세 여자 프란시스는 절친인지 여친인지 알 수 없는 소피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현대무용가이고 싶지만, 현실은 주인공의 부재를 대신할 견습 무용수다. 무대에 서지 못할 가능성이 무대에 설 가능성보다 훨씬 높은 대타. 생계는 어린이 발레 교실을 가르치며 근근이 이어간다. 그마저도 일이 얼마나 자주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프란시스와 소피는 종종 ‘우리 이야기’를 하곤 한다. 미국에서 제일 큰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에서 일하는 소피는 ‘출판 업계의 거물’이 되고, 프란시스는 ‘유명한 현대무용가’가 되어 소피는 프란시스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판하고, 파리에 별장을 사서 같이 놀러 가자는, 그런 두 사람의 ‘미래’를 꿈꾸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이 ‘우리 이야기’는 갑자기 소피가 다른 친구와 좋은 동네의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각자의 이야기’가 된다. 물 끓일 주전자까지 가져가 버린 탓에 냄비에 손이나 대고 텅텅 비어버린 집에서 프란시스는 뉴욕살이의 팍팍함을 고민한다.



프란시스의 두 번째 집 |
22 Catherine St, New York, NY 10038


부잣집 아들인 조각가 레브, 극작가를 꿈꾸는 벤지의 집에 남는 방 한 칸을 얻었다. 이사를 하면서 걸어 다닐 일이 많다. 그래도 즐겁다. 달리며 춤추고 춤추며 달리는 프란시스.


여전히 벌이는 변변치 않다. 크리스마스 공연 무대에 올라야 돈이 생기고 방세를 낼 수 있을 텐데 될 리가 없는 허무맹랑한 꿈이었을까. 결국 이번 크리스마스 공연에는 함께할 수 없다는 '임시 해고' 통지를 받은 프란시스. 방세 고민이 한창인데, 레브와 하룻밤을 보낸 여자로부터 늙어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듣는다.


벤지(좌)와 레브(우)


프란시스의 고향 집 |
214 Camellia Ave, Sacramento, CA 94203


크리스마스에는 전국을 순회하며 무대를 누비고 싶었는데, 야무진 꿈이었다. 고향 집에 온 프란시스는 소소한 명절 일상을 보낸다. 친척들 만나고, 교회 가고, 자전거로 동네 돌아다니고, 아버지와 정원 청소를 하고, 어머니 쇼핑에 따라 나서고, 친구들 만나고....


프란시스를 연기한 그레타 거윅의 실제 고향인 세크라멘토에서, 그녀의 부모님이 직접 출연했다. 짧게 스쳐 간 장면이라 가능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더욱 짠하다. 성인이 되어 제 앞가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가족을 만난다 한들, 그저 속 편히 위로받고 응원받을 수만은 없으니까.


뉴욕에 돌아온 프란시스는 무용단의 전속 무용수인 레이첼 집에서 잠깐 지낸다. 참 안 맞는 레이첼 친구들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지만 역시나 영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웃으라고 한 농담이 어색함과 불편함으로 돌아오는 대화 속에서 소피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남자친구의 직장을 따라 일본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농담을 건네지만 돌아오는 건 어색함뿐


서로 사랑한다는 걸 아는 사람과 파티에 있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하고 있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서로 빛이 나죠.
소유욕이나 집착 같은 게 아니라, 이번 생에는 그 사람이 내 사람이기 때문이죠.
웃기면서도 이 인생이 끝나니 슬프기도 하고, 타인은 모르는 비밀 세상이 열려있는 거죠.

저녁식사 자리의 미운 오리 새끼였던 프란시스는 이 대사로 단번에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 덕분에 옆에 앉아있던 변호사의 파리 별장에 묶는 기회도 잡는다. 물론 비행기값은 프란시스 신용카드 몫이다.


월요일 무용단 미팅을 앞두고 말도 안 되는 이틀짜리 파리 여행을 간다. 시차 적응에 실패한 프란시스는 내내 잠만 자다가 온다. 다른 영화같으면 해질녘 파리 몽마르뜨 언덕에서 혼자 춤을 추다가 유명 무용단 감독의 눈에 띄어 전속 무용수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프란시스는 정말 잠만 자다가 온다. 심지어 제대로 된 밥을 먹는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프란시스의 파리 여행은 이 사진과 같다. 겨우 이틀인데, 그마저도 낮에는 자고 밤에만 나온다. 에펠탑도 개선문도 화면 속에 나오지만 그저 멀리 있을 뿐. 파리라는 것을 알기 어렵다.


빠듯한 파리 여행의 이유였던 무용단 미팅의 결과도 참담하다. 무용수가 아니라 사무직으로 자리를 잡고 안무가로 커리어를 쌓아보라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다른 무용단과 전속 계약을 하게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개뻥을 친다.



프란시스의 세 번째 집 |
PO BOX 59968 Poughkeepsie, NY 12601-9968


자존심을 내세운 결과, 프란시스는 주소는 뉴욕이지만, 우리가 아는 뉴욕에서 북쪽으로 한참이나 떨어진 곳으로 가게 된다. 이미 졸업한 대학의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대신, 이런저런 일을 도와주는 음.. ‘소사’ 같은 역할을 한다. 어린 대학생들로부터 눈총이나 받고, 무용 강의를 청강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모양새가 처량하기 그지 없다.


구겨진 스텝 옷을 입고 어린 대학생과 나란히 선 프란시스. 서른에게 스물일곱은 어리지만, 스물에게 스물일곱은 한참 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교 기부 모금 행사에서 서빙을 하던 중, 일본으로 떠났던 소피와 그의 약혼자와 마주친다. 소피는 약혼자와 싸우고 프란시스의 방을 찾아와 “예전처럼 같이 살자”며 마주보고 웃지만, 다음 날 아침 ‘술김에 미안하다.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쪽지를 남기고는 약혼자의 차를 타고 떠난다.



프란시스의 네 번째, 마지막 집 |
97 Audubon Ave, Washington Heights, NY 10032


영화 내내 입고 나온 가죽점퍼와 시폰 원피스, 캔버스운동화를 벗어던진, 다소 낯선 차림새의 프란시스가 등장한다. 산만하기 그지없던 머리카락도 차분해지고 흰색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오는 검은 A라인 치마, 검은 플랫슈즈를 신었다. 차림새만으로도 불안했던 그의 내면이 안정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아.. 다시 보니 그렇게까지 차분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스타일이 많이 안정된 프란시스. 무려 안경도 쓴다.


프란시스는 무용단에서 제안한 사무직을 받아들이고 다시 뉴욕으로, 맨하탄으로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무용수보다는 안무가로서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는, 작은 공연장에서 자신이 만든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다양한 체형과 나이의 무용수들이 평범한 복장을 하고 이리 저리 움직인다. 마치 실수인 듯, 춤인 듯 말이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객석은 소피부터 벤지, 레브 등 친구들과 관객으로 가득찼다. 소피와의 관계에서 정체성마저 모호했던 프란시스는 공연을 마치고 멀리 선 소피와 씽긋 웃어 보임으로써 그들의 관계가 좀 더 성숙해진 친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힘들 때 위로해주던 두 번째 집의 동거인 벤지와 묘한 뉘앙스를 남긴다.


그렇게 뉴욕으로, 그것도 맨하탄으로 제대로 돌아온 프란시스는 그의 네 번째 집이자 영화 속 마지막 집을 구한다. 누구의 집에 얹혀사는 것이 아니라, 우편함에 오롯이 제 이름 ‘FRANCES HALLADAY’을 올릴 수 있는 집. 이제 시작이다.

이 영화가 'FRANCES HALLADAY'가 아니라 'FRANCES HA'인 이유. 우편함 이름을 쓰는 공간이 모자랐다. 그뿐이다.




감독은 영화같지 않은 영화를 표방했지만, 세 번째 집이었던 기숙사에서 네 번째 집 맨하탄으로의 이동은 다소 극적이다. (아닌 척하지만 이 역시 영화니까) 자존심 하나를 내려놓고, 주어진 것을 기꺼이 즐겁게 하면서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에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프란시스는 온전한 제집을 얻게 된다. 넘어지고 그 반동으로 다시 일어나는 춤처럼 영화 내내 덤벙거리고 어른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주인공은 잘 넘어지고 또 잘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나를 보게 된다. 지금 내가 놓지 못하는, 여전히 낑낑거리며 부여잡고 있는 자존심은 무엇인가. 나는 내가 뭘 잘하는지, 내게 주어진 기회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건가. 나는, 프란시스가 만든 공연 속 무용수들처럼 잘 넘어지고 잘 구르고 다시 잘 일어나고 있는가.


잘 크고 싶다. 물론 몸이야 이미 위로는 다 컸다. (옆으로는 아직 여지가 남아있다만) 내 인생을 잘 키우고 싶다. 부모님 덕분에 커온 시간들을 지나, 이제 하나부터 열까지 내 책임이 될 내 인생을 잘 살아내고 싶다. 프란시스처럼, 성장하는 내가 되기를 바라며.


-만금-

매거진의 이전글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하라. 무엇이든 괜찮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