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시리즈
일상이 부쩍 어려워진 건 당연했던 것들의 부재 때문이다. 마스크 없이 외출할 수 없게 된 것부터 카페 테이블에 한가로이 앉아 있을 수 없는 것, 밤 늦게까지 깔깔대며 술을 마실 수 없는 것. 방호복을 벗지 못하는 의료진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볼멘 소리도 안될 말이지만, 염치 없게도 나는 아무럴 것 없었던 일상을 되찾기만 바라고 있었다. 다섯시면 해가 지고 세상은 오래 깜깜했다. 연말이면 만나던 사람들에게 건강하자는 인사로 마음을 대신 전했다.
그즈음부터 KBS 명작 다큐 <차마고도> 시리즈를 봤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란 놀라운 것이라서, 어린 아이로 환생한 고승을 찾아다니는 스님의 이야기를 보고나서부터 티베트와 관련된 영상들이 피드에 뜨기 시작했다.
차마고도는 오래전부터 중국과 티벳 오가며 차와 말을 교역했던 길로, 좁고 험한 탓에 '쥐와 새들만 지나다니는 길'로도 불렸다고 했다. 그 길에서 말을 부려 교역하던 이들을 마방이라 불렀고, 시리즈 첫 편인 <마지막 마방>이 이들의 모습을 가장 먼저 보여줬다. 돌부리가 많은 산이 이어지는 협곡, 좁은 길로 짐을진 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강을 건너려 외줄을 타고 사람 하나 말 한 마리씩 옮겨가다 죽거나 다치는 일도 많다고 했다. 그래도 커다란 하늘과 산과 강 안에 사람과 말들은 줄지어 걸었다.
두번째 편 <순례의 길> 에서도 사람들은 걸었다. 불심이 지극한 티베트인들에게 성지 라싸에 가는 일은 평생에 한 번 이뤄야 할 꿈이라 했다. 순례자 세 명은 나무 장갑을 끼고 가죽 앞치마를 둘러맨 채 꼬박 육개월을 오체투지를 하며 걸었다. 박수를 세 번 치고 절을 한 뒤 팔 다리를 쭉 뻗어 바닥에 몸을 붙이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했다. 개울이나 담장이 나타나 절을 할 수 없을 땐 그 폭만큼 미리 절을 하고 도로를, 산길을 계속 걸었다. 어떤 순례자는 다음 생을 준비하기 위해서 고행을 자처한다고 했고, 큰 아들을 잃고 가족 모두가 순례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알고 싶은 건 '어떻게?'였다. 내 가는 길 끝에 라싸가 있음을 어떻게 믿지? 어쩜 의심도 없이 걷기만 할 수 있지? 시리즈는 네 편이 더 이어지지만 사람들이 자꾸 걷는 앞의 두 편을 자주 돌려봤다. 그 사이에도 유튜브의 티베트 영상 추천은 계속됐고, 다른 영상에선 관광지로 개발된 비교적 최근의 라싸를 봤다. 베이징에서 티베트를 잇는 긴 철도가 생겼다고도 했다.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을 찾아봤으며 티베트 망명 정부가 인도 다람살라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변변한 물리적 저항도 없이 당하기만(하는 것 처럼 보이는) 그들이 안타까웠으나, 사람들은 그저 몸을 움직여 가야할 길을 가고 있었다.
세상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도 계속 걷는 그 '어떻게'는 외부인인 내가 감히 이해할 영역이 아니었다. 코로나도 물러가 우리 일상이 돌아오고, 중국의 티베트 탄압이 없어지는 날이 올까. 생각할 시간에 영상 속 사람들은 걸음을 딛고 차마고도를 건너며 경전을 읽을 것만 같았다. 중국은 결국 티베트를 완전히 점령할 순 없을 거야. 그건 알 수는 없지만 믿음을 걸어볼 만한 일이다. 우리 세상도 그렇게 될까? 그건 믿어볼 수 밖에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