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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Aug 16. 2020

디자이너가 코딩을 해야 할까?

디자인과 코딩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요즘은 디자이너가 코딩도 하는 시대?"


디자인과 코딩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아마 많은 디자이너가 그러하지만 "디자이너는 뭐도 해야 하고 뭐도 해야 한다" 라는 말을 신물이 나도록 들어왔을 것이고 나 또한 그랬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도 그러하다. (왜 항상 배워야 하는 건 끝이 없을까) 내가 디자이너가 되고싶다고 생각을 했을 때는 한창 "디자이너가 코딩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이 많이 나왔었다. 나는 "디자이너가 HTML/CSS만 알면 먹고살 수 있지만 Javascript까지 할 수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린다"라는 말 한마디에 (속아) 바로 코딩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대학교 학부생이었기 때문에 대학교 학부생이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해보려고 했었다. 코딩 동아리에 등록하였다. 내가 속한 코딩 동아리가 빡센 편이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격일로 밤을 새워가며 동아리 과제를 했다. 컴퓨터 공학과 전공 수업을 수강신청하여 컴퓨터 공학과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들었다. 밤을 새워가며 하라는 과제는 안 하고 동아리 활동에 매달렸기 때문에 직전 학기까지는 학점이 4.3 만점에 4점대로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동아리에 들어온 이후로 학점이 2점대로 떨어졌다. 학점을 망쳐가면서까지 활동을 할 정도로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개발의 베이스인 수학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학기중에도 밤을 새워가며 함께 팀 프로젝트를 하던 동아리 친구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었다.


나는 중학교 이후로 수학의 수도 모르는 말 그대로 수포자였고 대학을 올 때도 미대입시를 쳤기 때문에 수학 점수가 아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히도 대학을 올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수포자의 정석이다.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꼭 정해진 길을 가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중, 고등학교 수학은 정해진 길이 있어서 답답한 느낌이었다. 수학보다는 문학, 철학에 더 관심 있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수학과 멀어진 나는 미술 실기를 하고 미대입시를 하며 더욱더 직관적인 사고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이런 내가 처음 코딩을 마주했을 때 그 사고방식은 너무 생소한 것이었다. 그때는 내 옆에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오로지 모르겠는 코드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이해해보고자 구글을 뒤지고 다녔었다.


주위에 친한 개발자도 없었고 공대생도 없었고 날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선생님도 없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책을 뭐부터 봐야 하는지도 몰랐고 삽질도 많이 했었다.


이렇게 동아리에서 CRUD(Create, Read, Update, Delete), MVC(Model-View-Controller), N:1, N:N 같이 개발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어찌어찌 습득하고 난 이후의 나는 뭘 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지금은 코드 한 줄 짜지 않는 그냥 디자이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며 개발을 하지 않는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디자인에 개발을 적용해보고자 디자인 툴인 스케치에서 json파일로 자동으로 네임텍 생성하려는 시도



기업은 개발도 어느 정도 하고~ 기획서도 어느 정도 쓰고~ 영업도 어느 정도 하고~ 거기에다가 디자인도 어느 정도 하는 디자이너를 원하지 않았다.


혹시 디자이너가 디자인도 하고 개발도 하고 마케팅 등등…. 모든 것을 다 해주길 원하는 회사라면 빨리 도망치길 바란다. 인간이라면 그 많은 일을 한 번에 다 하지 못한다. 업무시간에 디자인 조금 개발 조금 마케팅 조금 하다가 아무것도 쌓지 못하고 나가게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모든 것을 해주길 원하는 회사는 그만큼 자금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다. 다른 포지션을 구인하기에 돈이 없으니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원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큰 회사의 디자이너 포지션으로 취직을 한다고 하면 개발을 건드리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디자이너 구직을 했다면 그 회사는 디자이너를 뽑고 싶은 것이지 개발자를 뽑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를 뽑는 회사는 디자인을 '잘' 하는 사람을 뽑고 싶어한다. 너무 당연하게도 디자이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은 한 가지 일 잘하기도 어렵다.


물론 디자이너로서 개발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개발자와의 소통이 원활해지고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하도록 설득도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잡고 있고 앞으로 잡고 싶은 포지션이 디자인이라면 디자인에 충실해야 한다. 디자인을 잘하는데 개발까지 안다! 라면 확실한 차별 요소가 되겠지만, 디자인을 등한시하고 이것저것 하는 디자이너를 디자이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내 디자인의 허점이 많이 보였다. 한마디로 예전의 나는 이것저것에 한눈팔고 다니는 디자이너였기 때문이다. 디자인 기본기를 다지는 활동을 통해 어디 가서 "저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나 스스로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디자이너가 개발을 알아야 하냐 몰라도 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내 생각은 디자이너라면 적어도 디자인은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디자이너가 디자인도, 개발도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발은 만만하지 않았다. 계속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모르는 것은 파도 파도 끝이 없다. 개발을 정말로 하고 싶다면 정말 각잡고 공부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다 하겠다는 생각으로는 디자인도, 개발도 잡지 못할 확률이 높다.


물론 내가 디자이너가 개발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개발을 아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개발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주변만 해도 디자이너였다가 개발자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개발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정말 볼 때마다 대단하다.


하지만 옆에서 꾸준히 봐 온 사람으로서 그들은 비전공생으로 개발을 시작하여 엄청난 노력을 했다. 같은 디자인 과에서 개발자로 취직한 친구는 선형 대수학부터 펼쳐보며 공부를 하고, 밤을 새워가며 개발 프로젝트에 몸을 던졌다. 멋져 보이는 능력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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