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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 Jun 24. 2017

토함산에서의 일출

토함산에서 바라본 일출

    하늘은 이미 파랗게 시간을 열어가고 있지만 그 빛은 땅으로 내려앉지는 않아 산은 검고 어둡다. 저 멀리에서 빛의 속도로 뻗어온 빛의 입자들이 산에 닿는다. 검은 나무와 검은 꽃들은 마법에서 풀려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다. 어쩌면 일출을 보는 진짜 이유는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었던 나를 되찾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처음’의 앞

    불국사에서 잠을 잤다. 석굴암 주차장에서 출발할 수도 있었겠지만, 불국사에서부터 걷고 싶었다. 5시 40분께는 해가 뜰 예정이었다. 두 시간 전에 출발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산길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석굴암까지 3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였으므로 1시간 30분이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랜턴을 챙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해돋이를 보러 가는 중이었으니까 랜턴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바보. 해돋이 전에는 해가 없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해가 지면 바로 어두워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가 뜨기 전에 해도 없고 빛도 없다. 그 단순한 사실을 모르다니…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시초는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성질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를 조롱하기 위해 나는 그의 말을 인용하곤 했다. 풀이할 것도 없는 이 말을 다시 풀어쓰자면, 앞에는 아무 것도 없고, 뒤에 무언가 있는 것, 그것이 ‘처음’이라는 뜻이다. 이 당연한 말의 의미를 모른 채 나는 그를 비웃어 왔던 셈이다. 처음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당연한 사실, 일출 전에 빛이 있을 리 없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해돋이를 처음 본 곳도 이곳 석굴암이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은 으레 경주였으니까. 10월, 날씨는 차고 쌀쌀했다. 그러나 빛바랜 사진 속에서 늦가을 날씨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저 멀리에서 떠오른 불그스름한 빛이 석굴암 경내 구석구석을 덮고 있다. 그 빛은 아궁이 속에서 벌겋게 단 숯불과도 같다. 강렬하지도 격렬하지도 않은 빛은 그윽하게 토함산을 휘감고 있다. 그 빛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찍은 단체사진 속에서 담임 선생님도 친구들도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단체사진은 무모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무작정 토함산을 찾은 건 아무래도 그 따스한 빛이 그리웠기 때문이리라.     


석굴암에서 토함산 정상까지: 검은 어둠

    바보 같은 일투성이다. 막상 석굴암 입구에 도착했는데, 해가 뜰 시간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석굴암 개방 시간은 6시 30분부터라고 한다. 그러니 석굴암에서 해돋이를 보려면 10월 중순이나 11월에 와야 했다. 해가 뜨려면 30분도 남지 않았다. 여기에서 토함산까지는 1.4km. 40~50분 거리라고 친절하게 푯말까지 적혀 있다. 목표는 일출이었으니까, 토함산을 향해 뛰었다. 왜 나의 계획은 항상 일그러지는 것일까, 왜 나는 여행에서조차 여유를 누릴 수 없는 것일까. 토함산 정상을 지척에 남겨두고 해는 저 아래에서부터 붉은 기운을 드러내고 있다. 

    토함산 정상에서 보는 해돋이는 해변에서 보는 해돋이와 그 느낌이 다르다. 바다에서는 해를 올려다보아야 하지만, 산에서는 더 넓은 시야로 해돋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갓 떠오르는 해는 강렬하지 않다. 여명이 해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날이 희미하게 밝아 오는 무렵을 뜻하는 ‘여명’은 매우 모순적인 단어다. 여명의 ‘여’는 본래 ‘려(黎)’로 ‘검다’라는 뜻이며 물론 ‘명(明)’은 ‘밝다’라는 뜻이다. ‘여명’의 한자를 그대로 풀어쓰면 ‘검은 밝음’이 된다. 검은데 밝다? 어두운 것이 어떻게 밝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해돋이를 직접 본 사람이라면 여명이라는 말이 얼마나 정확한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새벽의 태양은 얇고 검은 비단 같은 막으로 감겨 있다. 이 얇은 막 덕분에 떠오르는 해를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다. 이 막에 휩싸인 태양이 내뿜는 빛은 그야말로 ‘어둑한 빛’이다. 진리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처럼 모순적인 말들 속에 담겨 있을 것이다. 여명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해를 휘감고 있다가 해의 위쪽 가장자리에서부터 천천히 풀리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태양은 찬연한 빛을 발한다. 이 짧은 여명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부산히 움직였다. 모든 연약하고 가녀린 것들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순간적이다. 그 순간 속에 진리가 담긴다.

    맑은 날엔 포항 앞바다까지 보인다고 한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서 그 수평선의 빈틈을 헤집고 떠오르는 태양은 바다에 선을 긋듯 긴 빛을 드리울 것이다. 천 년의 고도 경주에서, 천 년 전에도 솟아올랐던 해가 오늘을 향해 빛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해돋이를 보노라면 삶은 아득하고 그윽해진다. 아무리 계획이 일그러지고, 일이 꼬일지라도 해돋이를 권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해는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당신에게 토함산에서의 해돋이를 권한다.  


*경북매일에 실은 글을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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