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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 Jul 27. 2017

제 자리: 소리가 잦아드는 곳

<<현의 노래>> 중

사진출처: pixabay

    니문은 엄비로 한 줄을 튕겨 올렸다. 소리가 솟구치더니 긴 떨림을 이끌고 잦아들었다. 

    -이제 들리느냐?  

    -들리지 않습니다. 들리지 않는 소리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제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소리는 사는 일과 같다. 목숨이란 곧 흔들리는 것 아니겠느냐. 흔들리는 동안만이 사는 것이다. 금수나 초목이 다 그와 같다.  

    -하오면 어째서 새 울음소리는 곱게 들리고 말 울음소리는 추하게 들리는 것입니까?  

    -사람이 그 덧없는 떨림에 마음을 의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떨림과 소리의 떨림이 서로 스며서 함께 떨리기 때문이다. 소리는 곱거나 추하지 않다(김훈, <<현의 노래>>, 174면)  


    '제 자리'란 현을 튕기기 전의 곳, 즉 있지 않았던 곳이리라. 있지 않았으니 '곳'이라고 할 수 없다. 있지 않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우리는 결코 있지 않음의 방식으로 사유할 수 없다. 하여 있는 곳에서 쓰는 말이 아니고서는 없는 곳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  

    '우륵은 가을에 죽었다.' 소리가 그러하듯 우륵은 가을에 죽어, 있지 않은 곳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있는 곳에서는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겠지만, 없는 곳에서는 없는 것들이 없는 것을 알아볼 것이다. 사과처럼 벼처럼 익어 우륵은 가을에 죽었으니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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