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의 "광장"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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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이명준은 남한과 북한의 현실에 좌절하고 또 그의 유일한 도피처였던 은혜마저 잃고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는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땅. 하루 종일 거리를 싸다닌대도 어깨 한번 치는 사람이 없는 거리.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지도 모를뿐더러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했다(192면).
그런데 중립국 행을 택한 이명준이 돌연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 그 이유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건 아마 고독 때문이지 않을까. 이국의 밀실에서도 광장에서도 들이 닥칠 고독, 이 고독을 이명준은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고독이라는 단어는 소설의 첫머리에서부터 등장한다. 명준이 권투선수의 쉐도우 복싱을 바라보며 “그 노릇도 수월치 않는 모양이지.”라고 말하자, 친구인 태식은 “고독해서 저러는 거야.”라고 되받는다(53면). 이 때부터 이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고독’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든다. 그렇게 남발되던 고독이란 단어는 뚝 끊어지고, 소설의 말미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렇게 말이다.
“왜 이런 전쟁을 시작했을까요”
“고독해서 그랬겠지.”
“누가?”
“김일성 동무지.”(171면)
여기에서 ‘고독’은 외로움이라는 본래의 뜻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권투선수도 이해할 수 없고 전쟁도 이해할 수 없다. 삶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삶의 어느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삶의 어느 것도 이해받을 수 없다면, 그 삶은 고독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 없음’과 ‘외로움’은 동의어다. 고독은 그렇게 영혼을 잠식한다. 이때 인간은 고독, 그 자체가 된다. 하여 고독의 또 다른 이름은 죽음이다
.
“올드보이”의 미도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죠. 고독, 하면 무조건 개미죠. 개미 환각을 겪어 본 사람들은 진짜 외로운 사람이거든요. 내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개미는 항상 떼루 댕기잖아요. 그래서 진짜 외로운 사람들은 개미 생각을 자꾸 하게 되나 봐…… 물론 나는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