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는_언제나_짝사랑_같은_존재였다.
부대 체육시간이다.
우리 부대에서는 내가 선곡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떤 때는 영관 장교를 위한 무한궤도의 노래가 나오고,
또 어떤 때는 위관 장교를 위한 데이식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모든 사람들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했던 것이다.
그런 노래를 뚫고 연주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기타 소리가 들리는 사무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서는 부서장님께서
하사와 중위 하나를 위한 기타 교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기타 좀 치나?"
"오,, 치고 싶습니다."
"치냐고"
"코드는 잡을 줄 압니다."
그렇게 스카우트가 되고 점심시간마다 기타를 치러 지하로 향했다.
그 부서장님께서는 나름 기타에 진심이셨다.
지하실에 있는 물건들을 다 옮겨서 동아리방을 만들었다.
창고로 사용되던 기타 연주실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지하에 있는 탓에 냄새는 빼지 못해도 합꾸(합주실 꾸미기)를 시작했다.
온갖 기타 악보를 다 인쇄해서 지하실에 도배를 해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지하실은 귀여워졌다.
부대에서 기타 좀 친다는 사람들이 기타를 다 가져다 놓았고
안 쓰는 의자들을 하나씩 가지고 와서 나름대로 괜찮은 합주실의 와꾸가 만들어진 것이다.
처음 문을 열면 쿰쿰하고 습한 내가 코를 가득 찔렀지만 기타를 치다 보면 마비가 되었다.
빠르게 죽는 거 아닐까? 의 문제는 나중의 문제였다.
기타 동아리의 이름도 지었다.
"'기타등등'으로 하시지요. " "걍 맘대로 해."
그렇게 기타등등의 첫 번째 멤버들은
합주실을 완성시켜 놓고 첫 번째 곡을 고민했다.
비장한 표정으로
너희가 진짜로 연주하길 원하는 곡
5곡을 적어오라고 하셨다.
"과장님, 저는 좀 신나는 거 하고 싶은데 '크라잉넛_ 말 달리자'로 가실까요?"
"조개껍질이나 묶어라"
첫 번째 곡은 '윤형주 씨의 조개껍질 묶어'였다.
그 3명의 수강생이 적어온 5곡에는 들어있지 않던
‘답정너'의 곡이었다.
기본 코드 정도는 알던 수준에서 배운 '조개껍질 묶어'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대충 칠 수 있는 나름의 혜자곡이었다.
4마디가 반복되고,
나름 또 신이 나기까지 하는 노래!
과장님은 첫째 날부터 ‘조개껍질 묶어’를 완주하던
나를 보며 '네 마음대로 해라.' '하라는 대로 해라.‘ ’걍 말 좀 들어.'라는 말을 아끼고 나를 아껴주시기 시작했다.
"미희가 여기서(3명 중에) 에이스구나."
태어난 지 삼십몇 년 만에 처음
그 지하셋방살이를 하며 에이스의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점심을 5분 만에 먹고
지하에서 40분 간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15분이 제일 고비였다.
과장님은 매번 나름 현란한 연주를 보여주셨지만
무거워지는 눈꺼풀과 움직이지 않는 손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좀 제대로 쳐봐 봐."
"과장님이 한번 더 보여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터지는 혈당스파이크와
과장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과장님이 기타에 집중하시는 몇 분 동안은
연주를 듣는 척을 하며 절반은 조는 것이다.
눈을 뜨고 봐야 연주실력이 느는데,
눈만 감고 귀로만 들으니
천재들도 아닌 사람들이 나아가질 못 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점심시간에 좀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상 합법적인 휴식시간인데
매일 이렇게 연습을 해야 한다고!
기타리스트가 될 것도 아닌데
이렇게 진심으로 친다고!
과장님은 기타를 가르치면서도 "이게 안 되니?" "연습한 거 맞지?" 라며 우리의 진심을 의심하기 시작하셨다.
나름대로의 변호도 했다.
"과장님 제가 집에 기타가 없어서 여기서만 치는데 40분간 속성 강의를 해주시는 덕에 그래도 이게 많이.."
"더 열심히 치도록 해라. 우리 다음 주에 공연하자."
공. 연.
그렇게 첫 번째 공연을 하기로 하고서는
다음 날부터 더 열심히 쳐야겠다는
나름의 비장한 마음을 갖고
점심시간에 지하를 가게 되었다.
과장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실력이 뽀록날 수 있으니 녹화를 하자."
"그럼 차라리 안 하는 것은 어떨까요?"
"카메라 빌려왔니?"
그렇게 그동안 연습했던 공연곡을 녹화했다.
나는 F코드를 잡질 못하는데
F를 자꾸 잡으라고 하셔서
과장님의 F코드소리에 묻히길 바라며
손으로 립싱크를 했다.
나름 혼신의 연주를 했다고 생각해서
무사히 지나갔다고 믿었다.
다음 날 전역식에서
녹화영상이 틀어졌다고 전해졌다.
나는 차마 보질 못 했다.
전역식에 참석했던 선배들은
지나가며 한 마디씩 했다.
"미희야 너 F 못 잡지?"
그렇게 수치스러운 첫 번째 공연이 끝났다.
아 기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매일매일 지하합주실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