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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n 14. 2023

아이들은 왜 뚱뚱한 친구를 놀릴까?

1학년 아이들은 어떤 대화를 할까?


# 1학년아이들은어떤대화를할까?



아침에 교실에 오니 여자아이들 몇 명이 구석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더군요.

“(급식 메뉴표를 보며) 오늘 점심때 탕수육 나온다. 바삭한 탕수육이랑 레몬 소스래.”

“오, 나이쓰! 맛있겠다. (우는 목소리로) 근데 난 못 먹어. 잉잉.”

“헐. 왜 못 먹는데?”

“나 어제부터 다이어트 중이라서. 엄마랑 약속했어. 기름기 안 먹기로.”

“야, 탕수육은 괜찮아. 고기잖아.”

“헐, 뭐래냐? 탕수육이 고기를 기름에 튀긴 건데. 맞죠, 선생님?”

“아, 그런가?”

“네, 기름이 칼로리 디따 높거든요. 먹으면 돼지 돼요. 선생님도 조심하세요.”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돼지 될 뻔했네.”

“(다른 아이가) 치킨도 드시면 안 돼요. 그것도 튀긴 거거든요. 우리 아빠가 치킨 많이 먹어서 구 개월 됐잖아요.”

“구 개월?”

“네, 임신 구 개월요. 엄마가 붙여준 별명이거든요. 선생님도 조심하세요.”

“아,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구 개월 될 뻔했네.”

“그니깐요. 맨날 앉아만 있지 말고 좀 뛰세요.”

“응. 알았어. 좀 뛸게. 근데 다이어트는 왜 하기로 했어?”

“저야 모르죠. 엄마가 하라잖아요, 글쎄.”

“(옆 아이가) 헐. 야, 니가 살쪘으니까 그렇지.”

“야, 나 살 안 쪘거든? 살은 지가 쪘으면서.”

“야, 니가 더 쪘거든? (자기 배를 만져 보이며) 나 배에 복근도 있거든?”

“뻥 치시네. 니가 무슨 복근이 있냐?”

“(배를 훌렁 걷어 보이며) 야, 나 진짜 있어. 봐!”

“그게 무슨 복근이냐? 뱃살이지. 선생님, 이거 복근 아니죠?”

“글세, 난 잘 모르겠는데?”

“블핑(블랙핑크) 제니 복근 함 찾아보세요. 인터넷에 나와요.”

“야, 제니 복근을 니가 어떻게 아냐?"

"우리 엄마가 다이어트하느라고 냉장고에 붙여 놨으니까 알지. 진짜야! 그리고 이거 복근 맞거든! 우리 엄마가 복근이라 그랬어. 만져 봐.”

“물렁물렁하네. 니네 엄마가 뻥 친 거야.”

“(화난 표정으로) 우리 엄마 뻥 안 치거든!”

“야, 복근은 딱딱하거든. 맞죠, 선생님?”

“아이고, 이러다 싸우겠네. 근데 그 복근은 얼마짜리야?”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아, 선생님 또 뭔 소리세요? 설마 복권 얘기하는 거 아니죠?”

“복근... 이라며? 그거 로또 아냐?”

“헐. 그건 복권이죠.”

“아, 그래? 난 로또 복권인 줄 알았네.”

“얘가 자꾸 저더러 살쪘다 그러잖아요! 짜증 나게. 난 보통인데.”

“헐. 니가 보통이냐? 너 비만이잖아.”

“야, 그래도 ㅇㅇㅇ(몸집 큰 개그맨) 보다 날씬하거든!”

“야, 걔랑 비교하냐? 걘 완전 뚱뚱하잖아. 맞죠, 선생님?”

“근데 ㅇㅇㅇ는 누구야?”

“개그맨이잖아요. ‘맛있는 녀석들’에 나오는.”

“아, 거기 1학년도 나오나?”

“헐. 아니죠. 1학년이 어떻게 나와요? 어른들만 나오죠.”

“아, 그래? 너네가 ‘걔’라고 하길래 친구인 줄 알았어. 어른이 '걔'라는 말 들으면 서운할 것 같은데.”

“에이, ‘걔’라고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 엄마도 ‘걔’라고 그러거든요. 걱정 마세요.”

“(다른 아이가) 근데 걔 100킬로 넘겠지?”

“넘을 걸. 선생님, 검색 좀 해보세요. ㅇㅇㅇ 몇 킬로 나가나.”

“몸무게는 비밀인데. 막 말해도 되나?”

“에이, 검색하면 다 나와요.”

1학년 건강검진 및 구강검진 결과서가 통보되는 시기입니다. 보통은 검사한 병원에서 학생 가정으로 우편 발송합니다. 학교에도 따로 통보되는데요. 담임이 건강기록부에 기록해야 하거든요. 검사 결과를 보니 우리 반 스무 명의 어린이 중 약 3분의 1이 과체중, 또는 비만입니다.

1학년은 아직 자아 개념이 약해서 자기 몸에 대해 느끼는 민감도가 고학년보다 낮습니다. 키가 큰지, 작은지,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지 그 반대인지 관심이 덜하지요. 그냥 자기가 가장 멋진 줄 압니다. 당연히 이런 걸로 친구들을 놀리는 일도 적지요.


하지만 자아가 발달하면서 자기, 특히 신체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어느 날 갑자기 거울 속 자기 몸이 다른 친구들보다 뚱뚱하거나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미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나는 주변 어른들로부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라는 찬사를 들었지요.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면 남들이 보는 내 모습도 당연히 예쁠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닌 거지요. 나는 예쁜 사람이 더 이상 아니며 심지어 못생겼다고 공격받을 수도 있습니다. 자의식이 생기면서 불안, 초조도 증가하는 데 자기 외모에서 먼저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외모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는 시기는 3, 4학년 무렵입니다. 이 시기 아이들이 생각하는 멋진 몸은 키가 크고 날씬한 몸입니다. 자기가 멋진 몸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 반대의 생각을 하는 아이는 열등감을 느끼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자부심, 열등감은 건강하지 않습니다. 자부심은 근거 없이 너무 높고 열등감은 너무 과장될 수 있거든요. 지나친 자부심은 아이가 스스로 과대평가해서 잘난척을 하거나 노력을 덜 하게 하고 열등감은 아이로 하여금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하게 만들고 무기력한 태도를 지니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자부심이나 열등감을 다스릴 수 있게 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우선은 아이들이 신체적 특징을 두고 놀리지 않게 지도해야 합니다. 놀림받는 아이 처지에서 솔직하게 말해주는 거지요. 세상에는 키 크고 날씬한 사람도 있지만, 작거나 몸집이 큰 사람도 있다고. 키가 작거나 몸집이 큰 사람은 처음부터 그렇게 되고 싶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므로 이런 걸로 놀리는 건 나쁜 짓이라는 것, 사람은 누구나 멋진 몸을 갖고 싶은 게 당연한데 그렇지 못 한 친구는 놀림을 받을 게 아니라 오히려 위로받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교실에서 이런 교육은 효과가 높지 않습니다. 배울 땐 잠시나마 그렇게 생각하던 아이들도 막상 친구와 다툼이 생기거나 감정적으로 흔들리면 바로 공격 본능이 살아나는지 놀리는 말을 하더군요. 아이들이 주로 공격하는 신체적 특징은 비만에 관한 겁니다. ‘뚱뚱하다’, ‘살쪘다’, ‘돼지 같다’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비만은 놀리는 아이들에게 손쉬운 무기가 됩니다. 


비만은 왜 놀림거리가 되었을까요? 친구가 뚱뚱하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보는 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이런 답을 하더군요.


- 뚱뚱하면 줄넘기도 잘 못하잖아요. 웃기기도 하고.

- 먹고 싶어도 참고 조금만 먹어야 하는데 막 먹어서 살찐 거잖아요. 자기 책임이죠.

- 우리 할머니가 뚱뚱하거든요. 관절이 안 좋아요. 살을 빼면 될 텐데.

- 뚱뚱하면 당뇨병에도 잘 걸리잖아요. 그냥 살을 빼면 되잖아요.


아이들은 뚱뚱한 사람을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살은 '그냥' 쉽게 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혹시 주변 어른이 평소 뚱뚱한 사람에 대해 낮춰 말하는 걸 듣지 않았을까요? 부모님이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가정이라도 미디어에서 뚱뚱한 사람을 놀리거나 낮춰 말하는 상황을 접하는 시대입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뚱뚱한 사람은 놀림받을 만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문제는 놀림을 받는 아이의 입장이겠군요. 뚱뚱한 건 아이 잘못이 아니니까요. 음식에 대한 맛을 느끼는 감각이 뛰어나서 먹는 게 더 즐거운 아이로 태어났을 수도 있고, 마침 그 아이의 엄마는 뛰어난 요리 실력의 소유자여서 맛있는 음식을 얼마든지 만들어 주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이 경우 뚱뚱한 아이는 놀림 받을 게 아니라 부러움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날씬한 몸이 최고이며 뚱뚱한 몸이 약점이라고 규정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불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배 나온 아빠 모습을 '구 개월'로 희화화하는 모습도 씁쓸합니다. 제가 어릴 때만해도 배나온 사람은 '배사장님'이라고 높여부를 정도로 부러움의 대상이었거든요. 언제부터 배가 나오면 살을 빼야하는 걸로 인식 전환이 이뤄졌을까요? 배가 나올 정도로 식량이 풍부해진 다음이겠지요. 배 나온 사람은 배 나온대로 멋지다는 생각을 하는 건 어려운걸까요? 시시각각으로 멋짐의 관점이 사람을 옭죄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 개월'이라는 농담이 없어지지 않는 한, 배 나온 아이들은 이유 없는 열등감에 괴로워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모쪼록 우리 아이들은 뚱뚱하든 날씬하든 즐겁게 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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