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가 내린다. 사흘 동안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그 전날은 두 번을 쓰겠다고 앉았는데, 앉아서 쓴 게 두 번인데, 그러고 삼 일을 그냥 보낸 셈이다. 아깝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삼다 문집 수록 원고를 수정했고 교회에 다녀왔고 예식장에 시식하러 다녀오기도 했다. 친구를 만났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었다. 스패니쉬 라떼와 돈카츠야끼우동과 샷 그린티라떼. 뭐 많이 했네. 그래도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내내. 『1984』를 다 읽었다. 무언가 했다면 그게 있겠구나. 책장을 덮기 하루 전날 백남기 농민이 운명하셨다. 책장을 덮던 날 삼다에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언급했다. 묵직한 마음이 들었다. 내내.
야한 슬립을 샀다. 문장으로 써도 여전히 부끄럽군. 에메랄드빛 바다,라는 표현은 너무나 식상하지만 에메랄드빛 바다,를 만날 생각에 설렌다. 바다거북이랑 수영하고 싶다는 거 진짜야. 꿈은 이루어져라.
이외에도 이것저것을 했다. 별로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급할 필요랄 것까지야 없지만. 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칠백일 이벤트라고 해야 할까, 할 것을 받았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책. 함께 읽고 싶다며 선물한 책의 첫 장마다 한 줄 잎글이 들어있었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로 시작하는. 그리고 마지막 한 방은 함께 만든 영상 안에 담긴 말씀이라며 고린도전서 강해책에, 한바닥 엽서. 눈물이 나고 말았지. 으앙.
이번 글은 다른 날에 비해 많이 일기 같다. 이 글은 일기에 가깝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 무언가를 쓸 때 무엇을 의도하지 않고 쓴다. 그것이 쓰기의 철칙. 철칙이란 말은 너무 거창한가.
아, 그리고 또. 지난 금요일, 정영문을 읽었다. 폭발하듯 설렘이 일었다. 전작 사서 읽고 싶다. 고대하던 『어떤 작위의 세계』를 우선 질렀다. 사는 김에 나도 모르게(?) 다른 책도 몇 권 담았다. 배송 언제 오냐. 주문했던 건 어젯밤. 아, 이번 글은 너무 일기 같다. 너무 일기다. 이래서 하루를 걸러선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