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무언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느 Sep 30. 2016

6,

  오전, 지금 시간대의 스타벅스치고 많이 붐비지 않는다. 드문드문 빈 자리가 있다. 내 옆자리도 비어 있다. 아침부터 꽤나 알찬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9시 요가를 다녀오고―아 정말 힘들었다, 제자도 나눔 준비하고, 삼다 문집 수록 원고 최종 퇴고했다. 삼다 문집 수록 원고 최종 퇴고, 2음절씩 띄어쓰기 재밌어서 다시 써봤다. 그리고 접속한 블로그. 여기까지 했으니 이제 나가볼까 하다가 조금이라도 문장을 쓰려 포스트 창을 열었다. 포스트 창을 열다,라고 말할 수 있나. 외래어에 너무 침투당했다. 외래어에 너무 침투당했다? 아 왜 이렇게 이상한 문장을 자꾸 쓰는 걸까. 보다 정확하고 정확해서 읽기 좋고 읽고 싶은 나도 모르게 계속 읽게 되는 나도 모르게 젖어드는 문장을 쓰고 싶다. 보다 정확하고 정확하게 흘러가는 문장. 나는 문장을 연습한다.


  나는 문장을 연습한다. 나는 문장 쓰기를 연습한다. 나는 정확한 문장 쓰기를 연습한다. 나는 지금 쓰는 한 문장에 집중한다. 타이핑을 하다 보면 한 문장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간혹 있지만, 길어질 때는 다시 짧게, 지금 쓰는 문장에 집중한다. 타이핑되는 글자를, 커서를 따라가려니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다. 머리가 어지럽다고 쓸 필요가 있나? 그냥 어지럽다,고 쓰면 될 것 같다. 몸이 어지러울 수는 없으니까. 몸이 어지러울 수는 없나? 적어도 그런 언어는 낯설다. 표현하지 않는 것. 표현하지 않으니까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만, 표현은 없는 것 같다.


  『1984』에서는 언어조차 지배했다. 사람의 생각을 제한하려 언어를 없애고, 기존의 언어를 없애고 새로운 언어를 제시했다.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서히, 필요없는 말이라며 점차 없앴다. 언어를 기반으로 생각하는 존재인 우리는 모두 언어에 갇혀 있는 셈이다. 언어에 갇혀 있다. 갇혀 있다고 하면 네모난 공간이 떠오른다. 언어라는 네모난 공간에 갇혀 있다. 갇혀 있다는 것은 이 밖의 공간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상상할 수 없다. 외부 세계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다. 갇혀 있기 때문에. 갇혀 있으면서도 갇혀 있음을 모른다. 이건 놀랍다. 갇혀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다. 간혹 표현하고자 하는 심상이 제 마음껏 표현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답답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뿐이다. 그뿐이다... 그뿐인가. 그뿐이라니 놀랍다. 때로는 한계를 인식하더라도, 그러니까, 갇혀 있음을 인식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오, 어쩔 수 없다. 탈출이 불가능하다. 탈출은 불가능하다. 갇혀 있는 세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밀린다고 밀리는 벽이 아닌 것이다. 언어는 벽이다. 밀리지 않는 벽. 하지만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밀면? 센 힘으로 밀면? 밀리기도 한다고 봐야 할까? 아닌 것 같다. 밀리는 느낌조차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진정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갇혀 있는 공간 안에서 내부의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조합할 뿐이다.


  오늘 했던 요가가 빈야사였나. 와 진짜 힘들었다. 다리에 힘이 다 풀려서 아무 것도 못하겠는데 계속 두 세트 한 세트가 더 남았다. 호흡하는데 정말 그만 하고 싶었다. 그래도 몸을 움직여서 좋기는 하다만 그건 끝났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요가 한 시간 다 끝나고 마지막에 하는 송장 자세, 휴식 자세가 제일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