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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May 21. 2024

몇 안 되는 후회

그땐 그랬지

가족 이야기는 작가의 서랍 속에서 한참 묵혀있다. 어떠한 계기로 글은 쓰지만 차마 이를 발행할 용기는 없었다. 쓰면서 내 감정이 정리되면 그만이지 싶었다. 요즘은 결혼 준비를 하며 가족에 대한 생각을 또 많이 한다.  이를 쓰고, 저장하고, 차마 발행하지 못한 글을 몇 번 읽다가 문득 작년에 적어둔 글을 발견했다. 과거의 나를 만나 대화를 하는 기분이라 신기하다. 지금과 미묘하게 다르지만 그래도 비슷하다. 지금의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후회가 남지 않게 어떤 행동을 하든 끝까지 부딪혀 보겠다.




행복하다. 그럴수록 과거가 그립고 또 보고 싶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신 지 몇 년이 지났다. 정확히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부모님이 싸우기 시작한 때부터 세야 하는 건지 아니면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을 때부터 인지 아니면 싫다는 아버지께 이혼해라고 도장을 찾던 때인지 그 시절 내 인생은 잿빛을 넘어 검은빛이었고 밖에서는 웃었지만 집에서는 웃지 못하던 때였다. 언니가 언젠가 네가 대학교를 타지로 간 게 집에서 도망가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 대학교를 고를 때에는 큰 기준이 없었다. 등록금 때문에라도 국립대를 가고 싶었고, 같은 부산이면 통학하기가 힘드니까 차라리 타지로 가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언니의 말을 듣고 혹시 진짜 내가 그랬던 건가 하며 곱씹게 되었다.


나는 부모님의 사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는데 요즘에는 부모님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법 말고, 사실은 어머니의 의견만 존중한 거였지만, 자식으로 이혼은 무슨 이혼이냐며 우리를 두고 어디를 가나며 생떼이라도 피워야 했던 건 아닐까 하며 그 당시의 몇몇 상황이 계속해서 스쳐 지나간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터뷰를 시작하며 청년이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데 빛나고 찬란한 순간이었다. 젊고 활기찼다.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를 글 쓰며 옛날 앨범을 찾아봤는데 연애하고 있는 김영미 씨와 유덕율 씨는 예뻤고 사랑스러웠고 웃고 있었다. 사랑스러웠다.


이혼의 사유를 찾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고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어린 시절 내가 얼마나 컸다고 어머니를 존중하는 척했을까, 사실은 다투고 싸우는 게 견디기 힘들어 나도 내가 편한 쪽으로 선택을 강요한 건 아닌가 싶다. 아버지를 인터뷰하면서 아버지한테 연애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여자가 무섭다고 대답하셨다. 그 답을 듣고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편한 쪽으로 결정 내린 일이 아버지께 트라우마를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또한 최근에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혹시 그 당시에 집을 나간 어머니께 집에 돌아오라는 이야기를 안 한 게 어머니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가 그러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그냥 한 번쯤은 아무것도 모른 척 떼쓰고 울었어야 했는데 우리 가족의 일인데 어머니와 아버지의 일, 두 분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른의 일이라고 단정 지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게 후회로 남는다.


물론 지금 나는 행복하고 우리 가족의 형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저런 후회가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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