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가장 큰 목표는,
하나님을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는 것이다.
가끔 성공했다고 여기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이런 경우다.
오늘은 성경을 종일 읽었으니까,
두 시간 넘게 기도했으니까, 나는 어제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어.
이번 주에는 월요 집회, 화요 모임, 수요 예배, 목요 모임, 금요 철야 예배… 많은 예배를 드렸더니 영적으로 충만해진 것 같아.
나는 찬양 인도도 하고 리더도 하고 온갖 봉사를 다 하고 있으니, 안심이야.
그에 비춰보자면 최근 나는 매일 실패한다. 하루 두 시간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고, 집회에도 안 나가고, 교회 봉사도 안 하고. 종종 가요를 부르고 춤을 추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나의 꿈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애쓰며 산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은, 여기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 저곳엔 분명 하나님의 은혜가 없을 거야, 생각했던 바로 거기에.
실제로 나의 행위나 서언의 모양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가늠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꽤 자신만만하기까지 하다. 그때 하나님을 더 사랑했을까, 자문한다면 글쎄.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애통하며 눈물로 기도하겠지만.
호기롭던 서언도, 목숨을 바친 기도도 세상을 살아가며 닳은 모서리처럼 뭉툭해져 갔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상 나와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자주 절망했다. 많은 날 죽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절망의 골짜기를 지나고 나서야 이 한 줄을 품에 안게 되었다.
‘여기에도 하나님이 계시더라.’
절대로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삶을 견뎌내고,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이며
하나님-
그 세 글자를 속으로 그려낼 때. 다만 그려낼 힘밖에 없을 때. 다음의 문장을 이어나가지 못할 때.
'하나님이 여기에 계시더라.'
불의로 가득한 세상과 눈먼 사람들, 도저히 이해 가지 않는 하나님의 침묵 앞에
기도할 수 없는 밤을 지나면서도 결국 하나님을 선택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더라.'
단 한 줌의 빛도 남지 않은 듯 마음이 어두울 때,
25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세상에서 홀로 어둠인 것처럼 여겨질 때,
차라리 내 심지에 붙은 불을 꺼버리고 싶을 때.
'하나님이 우리와 여전히 함께 하시더라.'
당신이 어제보다 오늘 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어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