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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답고쓸모없기를 May 17. 2022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좋아?

워킹맘은 외로워

20대에는 회사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

그때 내가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은 밀려드는 업무량과 컨펌받을 때마다 잔소리를 해대는 상사 뿐이었다.

나는 그럭저럭 회사 시스템에 적응하며 회사를 다녔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노닥거리면서 상사 뒷담화, 회사에 대한 불만들을 털어 놓았고 즐거웠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주말 동안 남자친구랑 뭘 했고 뭘 먹었는지를 이야기하며 깔깔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 같았고, 동아리 같았다.

내 또래 친구, 선배, 후배가 많았기에 가능했다.


30대 중반을 바라보지만 아직은 그래도 초반이라 우길 수 있는 나이인 지금,

내가 회사에서 가장 많이 스트레스 받는 부분은 사람 관계다.

그동안 내가 회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배워온 깨달음들을 총 집합시켜 

하나의 액기스처럼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있다. 

그 액기스의 주제는, 회사 사람들과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말자는 거다.

이것 저것 다 해봤지만 역시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면 마음을 적당히 여는 것이 답이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좋아."


한 선배가 내게 해준 조언이었다. 그래, 그땐 몰랐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나는 그 말 뜻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처럼 사람들과 반만 친하게 지냈다.

내 얘기도 반만 했고, 호응도 반만 했다. 100% 진실만 말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반만 진실을 얘기하며 '거짓말은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적당한 거리를 두려는 관계는 내 생애 가장 난이도 높은 미션이었다.

차라리 완전히 무시하거나 온전히 마음을 다 내어주거나, 둘 중 하나가 편했다.

내가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이기 때문일까? 


친한 친구들과 이런 고민을 나누면 대부분의 대답은  '어쩔 수 없다' '원래 사회생활이 그렇다' 라는 식이었다.


나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힘들었다. 회사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들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털어 놓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팀원이 아닌 다른 팀에서 마음 맞는 친구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서일까? 절실함이 없어서일까? 워킹맘이라서? 꼰대라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게 참으로 쉽지 않았다.


이렇게 일주일의 5/7를 허비하다보니.. 너덜너덜해진 나를 발견했다.


힘들었다.

먼저, 그렇게 하기 위해선 모든 것을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자로 잰 듯 사람을 대하려면 내 모든 말과 행동을 생각해야 했고 반대로 상대방의 모든 말과 행동과 표정 하나 손짓 하나까지 해석해야 했다. 무슨 속뜻이 있을까, 무슨 의도일까 그 사람의 마음을 추측해야 했고 그로 인해 내 행동을 결정해야 했다.


지쳤다.

사람을 제 멋대로 판단하는 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요하는 일이었다. 판단의 끝에는 증오와 미움이 생기기도 했다. 같은 공간에 매일 마주하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 건 매일 감정 노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멀어졌다.

가끔 소외감이 들기도 하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지만, 스스로 선택한 방법이라고 나를 다독이며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몇 개월 후 나는 자의반 타의반 직장 내 왕따가 되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없었다.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 조직내에서 걷돌고 있다는 걸. 그런데 가끔은 이런 내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걸. 하지만 또 많은 시간은 외롭고 슬프고 우울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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