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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답고쓸모없기를 May 26. 2022

오늘의 화

엄마 반성문

반성합니다.

반성하고 지금의 기분과 마음을 기억하고 뉘우치기 위해 기록합니다.


오늘 아침 유치원 등원, 전 바쁘다는 핑계로

별 것 아닌 일에 아이에게 화를 냈습니다. 

언성을 높였고 아이를 겁주었습니다.

실제로 아이는 진심으로 겁먹은 듯 보였습니다.


화를 내는 동안 약 0.1초 동안 '이건 아니야' 라는 생각이 불쑥 솟구쳤지만,

엄마의 탈을 쓴 나라는 인간은 내 화에 집중하여 '그냥 소리쳐 이 화를 내 속에서 빼내어버리고 싶다'는 마음만 강했습니다. 나만 생각했습니다.

아이에게 내 감정을 쏟아부어버렸습니다.

한 10분 정도 흐르고 나니, 내가 아이에게 화풀이를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말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이 정도 인간 밖에 되지 않는구나 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아. 내가 나약하여 우리 아이가 고통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왜 그럴까요?


엄마라면 모름지기 인간이기 이전에 엄마로서의 행동과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저는 자꾸 그것을 망각하고 인간이기만을 원합니다.

내 본능에 충실하고 내가 느낀대로 내 기분대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고작 4년을 채 살지도 않은 한국 나이 5세고,

저는 30년을 훌쩍 넘게 살았는데..



결국 저는 몇분 뒤 아이에게 사과했습니다.

엄마가 미안하다고. 잠깐의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높여서 정말로 미안하다고.

어쩌면 제 마음 편하자고 내뱉은 사과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는 천사처럼 제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

정말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미 울어 빨개진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안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안으면 엄마 기분이 좋아질 거라며..

엄마를 위해 피아노도 쳐주고 춤도 추었습니다. 아이는 천사인데, 저는 본능에만 충실한 몹쓸 인간입니다.


ㅜㅜ하지만 진짜로 무서운 것은, 이렇게 기록해두어도

아이가 하원한 뒤 밝게 웃으며 저를 맞이하면 저는 또 화를 낼까봐 이것이 반복되면서 그 과정에서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봐 무섭습니다.


별 것 아닌 일처럼 지나가버리게 될, 흘러가버리게 될 오늘의 화를 기록합니다.

내 속에 너무 많은 화들을 없애버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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