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름
여름을 움큼 뜯어다가
앞마당에 심어보자
냉큼 무쳐먹지 말고
여름은 어디서든 잘 자랄 것만 같지
뿌리내리는 게 직업인 것처럼
일요일 오후 가만히 앉아
선풍기를 쐬다 보면 슬퍼져
어디서든 불어오는 바람이 되고 싶을까 싶어
고개를 15도쯤 숙이고
선풍기는 맴맴 돈다
여름이 나중에 커다란 나무로 자라나면
나무는 정말로 갖게 될 것이다
여름이란 이름을
바람이란 이름을 가진 이가
곁에서 볕을 뿌리고
이름을 넘긴 바람은
더 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이
전부인 길 위에 있을 것이다
소중하고 나른한 오후
불쑥 자란 여름
한 뿌리 슬픔을 몸 안에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