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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Feb 13. 2022

일상의 패턴을 모으다

엄유정 <FEUILLES> 전시를 보고 이슬아를 읽다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의 글 버릇을 알게 된다. 오랫동안 나는 어떤 콘텐츠를 보고, 그곳에서 꽂히는 의미를 발견해 추출하고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이렇게 작성된 글이 마음에 들 때도 있지만 아닐 때는 극과 극 두 가지 형태로 글이 완성됐다. 작품에서 얻은 의미에 짓눌려 내 의도보다 무겁게 흘러가거나 의미를 담지 않으려 너무 애쓰다 시답지 않은 글이 되거나.


아무튼 그래서 이런 창작자들이 좀 부럽다. 대상 자체에 어떤 의미를 담지 않고, 그냥 보여줄 뿐인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한 감정을 들게 하거나 웃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최근에 본 전시와 어떤 작가가 그랬다.


엄유정 <FEUILLES>를 보다


2월 주제 '식물'에 딱 맞는 전시 <FEUILLES>가 열리고 있다. 이번에는 브런치 매거진을 함께 쓰는 친구와 전시를 함께 보았다. 우리는 이 전시에 각자 다른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최근 부쩍 관심이 생긴 '식물'과 '그림'이 있는 전시라 솔깃했고, 마침 덕질 중인 방탄소년단의 RM이 며칠 전 이 전시를 보고와 더 기대감이 상승한 상태였다. 친구는 이 작가가 그린 '빵' 도록을 구매했을 정도로 이전부터 좋아했던 작가였다. 'SOSHO'는 쇼핑몰이나 카페 등 다른 가게와 겸하는 서울의 여느 갤러리들과 달리 2층짜리 일반 양옥집을 개조한 형태의 색다른 느낌의 갤러리였다. 복도와 방마다 엄유정 작가의 식물 드로잉들이 전시돼있다.


엄유정은 다만 현장에 있는 식물을 그렸다. 남들이 무심코 보고 지나칠 가지가 뻗어가는 모양, 같은 초록이라도 다 다른 초록 같은 것들. 저마다 다른 식물의 형상을 낱낱이, 알알이 보여준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진짜 식물의 크기보다 더 크거나 작게 그 모양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의 각 방에는 작은 식물 드로잉의 여러 작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 모습이 얼핏 하나로 묶여 불규칙적인 패턴을 형성한 것처럼 보인다.


'일상적 삶에서 평범하고 중요치 않은 대상을 발굴하고 기록한다는 것'

갤러리에서 나눠주는 엄유정의 <작가노트> 중 한 글귀다. 누군가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진짜'를 모아놓는 것을 구경하는 건 흥미롭다.    


이슬아를 읽다


그 '진짜'들이 모이면 '구체적'이 된다. 앞서 내가 부럽다고 하는 창작자들의 스타일을 어떤 단어로 묶으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최근 이슬아의 글을 보고 '구체성'이라는 단어를 찾아냈다. 얼마 전 이슬아가 쓰고 그린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읽었다. 여기저기서 그녀의 인터뷰나 언론에 실린 짧은 에세이들은 봤지만 출간된 책을 읽은 건 처음이다.


책에는 '거의 모든 일에서 구체적인 것을 선호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구체성'은 이슬아 작가의 장기이자 글 버릇이다. 그녀의 글 속 주인공은 언제나 이슬아와 이슬아 주변 사람들이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에는 이슬아와 그녀의 부모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책을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어떤 친한 친구의 부모님보다 단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그녀의 부모님을 더 자세히 안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의 부모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알게 된 적이 없어 그 느낌이 기묘했다.


이슬아의 글 세계 속 인물들은 지어내지 않은 것이라서 그저 존재할 뿐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들에 대해 아주 자세히,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황을 나열할 뿐이다. 마치 제멋대로 펼쳐 나가는 나뭇가지처럼, 자신을 중심에 두고 관계의 가지를 뻗어나간다. 낱낱이, 알알이. 무언가에 대해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남에게 내보이는 것이 어려운 내게는 부러운 글 버릇이다. 올해 매주 하나씩 글을 쓰기로 한 것도 이러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나도 모를, 중구난방으로 펼쳐진 나의 일상 속 생각과 글을 그저 모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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