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던 맥머피가 정신병원에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 정신병원에 온 맥머피는 환자들의 개개인의 욕구와 권리는 생각하지 않은 채 병원 시스템에만 맞춰서 운영되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마치 그 모습이 자신이 교도소에서 겪어왔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 속 영웅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맥머피가 왜 범죄자여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주인공 맥머피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그 정신병원이 교도소와 다를 바 없이, 어쩌면 더 교묘하게 그들을 속박하고 있음을 관객들로 하여금 느끼라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초반까지도 맥머피는 병원의 속박에 환자들이 자신처럼 불만을 품고 있으리라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맥머피는 환자들과 어울리면서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누가 봐도 레취드가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의를 독단적으로 주도하고 있는데 환자들은 아무런 의의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맥머피는 누군가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그럴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나서서 야구경기를 보여 달라고 레취드와 본격적으로 다투게 된다. 이에 레취드는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여유롭고 온화한 표정으로 그럼 ‘다수결’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환자들이 야구경기를 보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레취드가 말한 ‘다수결’의 의미는 우리에게 조금 무섭게 다가온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민주주의와 함께 다수결의 원칙을 배웠다. 하지만 이곳 정신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다수결은 마치 뒤에서는 강요를 숨긴 채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척하는 것과 같다.
맥머피는 병원에 있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자진해서 이곳에 왔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맥머피는 순응하지 않고, 환자들과 함께 밖을 나가 자유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고, 파티를 열어 주는 등의 노력을 한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충격적이게도 그런 맥머피에게 징벌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한다. 그동안 감추어 두었던 속박의 폭력이 드러난 순간이다. 맥머피는 그런 폭력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해버린다. 그 때 말을 하게 된 추장이 세면대를 뽑으며 탈출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어쨌든 시도는 해봤잖아. 최소한의 노력은 한 거라고.”
영화에서는 맥머피의 모습이 영웅적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영화는 그 정신병원 내의 이야기만 그렸을 뿐이라는 것을 되새겨보면 맥머피가 행했던 저항이 영웅적으로 보였다 해도, 그것은 사회가 보았을 때는 작은 노력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의 대사가 슬펐다. 영화 속에 빠져서 본 관객은 맥머피의 저항으로 무언가 많이 변할 거라 믿었지만, 그것은 시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