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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준 May 10. 2022

노력하기에 방황하는 인간

모든 순간은 낭비되지 않는다

내가 지나온 순간들

날 나답게 만든 것


인간의 삶은 재능, 노력, 운, 타인의 외압, 시대의 흐름 및 역사적 사건으로 궤적을 가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자신이 처했던 환경이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사는 또 다른 자신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환경만이 날 만들었다면, 도대체 지금의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만약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면, 전이성의 법칙에 따라 (Transitive Law: A=B & A=C equals B=C) 나와 같은 시작을 (A) 공유하는 상상 속의 나는 (B)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와 (C) 같아야 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간단하게도 현실의 나는 상상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나일 뿐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궤적이 어떤지,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다.


“Childhood,” from Seoul

유학을 시작하고 돌아오기까지


내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업은 정체됐고 가세는 기울었다. 서초동 제일 구석에 있는 주택에 전세로 살면서 2년마다 이사를 하던 중, 부모님은 피나는 노력 끝에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우리 남매를 한동안 유치원에조차 못 보낸 것에 죄책감을 느낀 부모님은 빚을 갚고 남은 돈을 우리의 교육비로 지출했다. 덕분에 나는 6학년을 끝내기도 전에 동남아의 영어 캠프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첫 유학을 시작했지만 내 기대와는 달랐다. 담장 안에서 아무런 고민 없이 유흥을 즐기는 유학생들과 그늘진 길거리에서 미래 없이 사는 빈곤층을 접하며 나는 무기력해졌다.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가 흐릿한, 나태하고 방탕한 장소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아버지가 강도에게 습격당해 돌아가시자 나는 동남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을 설득하고 도달한 미국에서 나는 잘 적응했지만, 예상보다 더 늘어나는 유학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부모님은 무리하게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에 일어난 THAAD 사태로 모든 것이 날아갔다. 아무리 부모님이 대기업에 몸을 담고 있더라도 도저히 유학을 지탱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새로 정착한 미국을 떠나 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Cacoon,” from a Cave

중퇴하고 방황하기까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 한 나는 모순덩어리인 세상을 등지고 혼자 공부하겠다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당시에는 이 결정이 얼마나 큰 외로움을 불러올지 몰랐다. 실제로 자유로부터 오는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물 흐르듯이 살라는 장자의 글을 읽으며 세상을 만끽했지만 그 광활한 대지는 결국 방황의 광야였다.


광기는 광기를 부른다. 심연을 바라보는 우리는 심연에 더욱 빠지게 된다. 나는 안전한 이상을 만들어 자신을 가뒀고, 3년 동안 방 안에 쌓인 책은 오백 권이 넘었고, 집에는 빨간딱지가 붙여졌고, 내가 기억하던 친구들은 날 기억하지 못했고, 남들이 하는 것을 나는 하지 못했다. 나는 실패자였다.


동굴 속에서 3년간 칩거하며 외로움과 허탈감에 매일을 보냈다. 자기 연민과 우울증은 이미 빛이 바랬고, 진공 상태의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는 세상에 나는 의지할 것 없이 두 발과 손을 모두 사용해 흔들리는 땅의 모난 곳들을 최대한 부여잡고 있었다. 그 어떠한 확실함조차 보여주지 못한 세상에 원망할 틈도 없이, 누군가 제발 나를 구해 주길 바랐다.


“Salvation,” from the Twilight Zone

책을 쓰고 장학생이 되기까지


점차 내가 알던 친구들이 하나씩 명문대로 진학했다. 이성의 감옥에서 비교의 감옥에 갇힌 나는 검정고시를 봤다. 졸작을 출판하고 논술시험을 준비했다. 수시로 6개 대학을 준비했지만 결국 SKY 중 하나에만 지원했고, 그 대학은 떨어지면서 다시 밑바닥으로 던져졌다.


입시에 실패한 나는 두 달간 영화관에 숨어 지냈다. 생각이 생각을 뒤덮는 상황에서 해답을 찾고자 절과 수도원까지 찾아갔지만 혼자서는 답이 안 나왔다. 결국 그렇게나 싫었던 세상과 접촉했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정을 얘기하고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외국 모 대학 총장님의 조언을 따라 미국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가기로 했다.


그 다짐을 하고 약 일 년이 지났을 때, 나는 다섯 개의 미국 대학에서 장학생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중 내가 유학하던 동부에 소재한 대학이 마치 돌아온 탕자를 반기듯 학비 전액을 (약 3억 원) 지원해 주었다.


“Resumption,” from Ante Meridiem

새로 살아가기까지


지난 일 년간 잃어버린 학창 시절을 다시 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혼란스러워하던 유학생은 성인이 되었다. 4년 동안 친구 하나 없던 자퇴생은 수십 명의 친구들에게 송별회를 4번이나 받은 휴학생이 되었다. 소주도 못 마시던 스무 살은 보드카도 마실 줄 아는 스물한 살이 되었다. 이제 내 암울한 과거는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며 그 형상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내 평범한 삶 이면에 감추어진 끔찍한 과거는 종종 악몽으로 되살아나 내 날밤을 지새우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이 날 변화시켰음을 알고, 또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떠한 믿음도, 이념도, 논리도, 깨달음도 그랬다고 답할 수 없다.


'그 모든 순간의 선택이 지금의 날 만들었을 뿐이다.'


나는 주어진 모든 것을 잃었고 無에서 有를 만들 기회를 얻었다. 덕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환경에서 네팔, 노르웨이, 대만, 러시아, 마다가스카르, 몽골, 베네수엘라, 베트남, 북마케도니아, 소말리랜드, 스리랑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에콰도르, 에티오피아, 영국, 영국, 우간다,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이집트, 인도, 자메이카, 칠레, 캄보디아, 케냐, 터키, 파나마, 파키스탄, 페루, 프랑스, 호주 등 전 세계에서 도전하는 학생들과 함께 젊음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Withstand,” from Upper Bay

마무리하며


사람들은 내가 모든 것을 홀로 극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게 혼자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날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 나와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해준 당신들의 선의를 잊지 못할 것이다.


노력하기에 방황하는 자들이여, 파우스트의 피와 살을 머금은 후손들이여, 동아줄을 붙잡고 계속 걸어가길, 마찰 없는 미끄러운 빙판을 탈출하고 고르지 않은 현실의 길에서 삶을 펼쳐나가길 응원한다. 그리고 도움의 손길을 잡게 된다면, 나락에 빠진 노력하는 자들에게 그 손길을 돌려주길 부탁한다.


한강에서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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