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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준 Apr 16. 2024

역사의 무게

대중의 발걸음

사람들에게 과거란 좋거나 나쁜것, 크고 작은 것이다. 만약 당신이 신도라면 특별한 책이 더 오래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재의 책을 깔볼 것이다. 만약 한국의 학생이라면 일본의 만행과 한국의 발전, 베트남의 학생이라면 프랑스 독립과 나치독일을 모델로 한 국력상승이라는 파란만장한 역사에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과연 유럽의 대중에게는 나치와 소련이 나쁘고, 동남아의 대중에게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나쁘고, 한국의 대중에게는 일본이 나쁘고 미국이 좋은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여행과 세계경제인 현대에는 더 이상 국토, 시민, 무력으로서만 설명되는 국가는 사라졌으며 무형의 문화를 보존하고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국가라는 인식이 커졌다. 애국심도 월드컵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것이 되었고 빈 자리에는 인류애와 삶에 대한 고민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인간은 선험적인 믿음으로 현실을 바꾼다.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말했듯이 모든 승객들이 열차강도가 나타나고도 무언으로 협력할 수 있었다면 열차강도는 존재할 수 없었다. "과연 이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이 저들을 제압할 생각을 할까? 괜히 나 혼자 나서다가 개죽음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눈치게임이 있었기에 열차강도는 수적으로 앞서는 승객들에게 두려움을 선사할 수 있었다.


과연 우리 시대의 믿음이란 무엇인가? 가상현실과 일회성 소비의 중독, 밀림보다도 못하는 경쟁만능주의 아닐까? 나는 굳이 낙관적인 미래를 예견하지 않는다. 헨리 소로가 시민의 불복종을 쓰며 간디에게 영향을 주고 소금행진이 시작된지 어연 반세기가 지난 뒤에는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의 기록을 담은 책을 출판하고 자살했다. 스페인에서는 공화당이 내전에 패해 프랑코의 독재가 70년대 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20억명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우리 주변에서 정신분열증을 겪는 일반인들이 있다.


어떤 기술들은 가끔 우리에게 손짓을 한다. 이제 모두 잊고 미래만을 즐기라고. 순간만을 즐기며 살아가고 과거따위 개나 줘버리라고. 그러나 술수로 세워진 평화는 그 안의 구더기들로 인해서 오래 가지 못한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간에 지름길은 없다. 과거를 보고 잘잘못을 판단하고 더 많은 옳음이 지배하는 세상과 자신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케 할 대중의 지성과 의지가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대중이 진보의 주체일까 아니면 얹혀 살아가는 캥거루족일까? 그들에게 숙의의 과정은 있었는가? 제도적 변화를 도모했는가? 물론 새로운 일을 하기에 앞서 "만약 이렇게 할 수 있었다면 왜 그 누구도 하지 않았나?"라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과거를 더 자세히 알면 더 답에 가까워질 수도 있겠지만 잊혀지기도 하는 것이 과거이기에, 결국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큰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김포에서

201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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