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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Feb 08. 2022

02. 노련해졌지만 재미는 없더라고

'덕업 일치'를 꿈꾸던 직장인의 현실 직시 에세이



기자직을 내려놓은 내가 두 번째 직장으로 선택한 곳은 서초동의 한 로펌이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변호사가 필요해진 사람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해당 로펌을 접할 수 있게 광고하는....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변호사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직무였다. 처음 입사를 할 때에는 단순히 '바이럴 마케터'라는 포지션으로 알았는데, 막상 입사하고 보니 이런 난감한 직무였던 것이다.


이 두 번째 직장은 내게 '애증'으로 남아있다.


퇴사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매일 아침 안부 톡을 주고받는 아주 소중한 친구 두 명을 만들어준 곳이며, 지금까지 내가 옮겨 다닌 직장들 중 연봉이 가장 단기간에 급격하게 오른 곳이기도 하며, 1년 365일 칼퇴근이 가능한 최고 수준의 워라밸을 경험했던 곳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살면서 경험해 볼 법한 다양한(?) 인간상들을 모조리 경험하게 해 주었고, 규모가 이렇게 큰데도 이렇게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곳이기도 하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는 ‘한없이 미천한 사회 초년생의 위치’를 뼈아프게 느꼈다면 두 번째 직장에서 알게 된 진리는 워라밸과 돈을 양손에 모두 쥐여주어도 ‘나는 성취감 없이는 일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로펌에서는 약 3년간을 근무했는데, 그 3년 동안은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강력 사건들을 매우 가까이서 체감할 수 있었다. 버닝썬, N번방, 그리고 다수의 미투 사건 등.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 한 번씩 이 로펌을 다녀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피해자인 경우는 드물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만한 사건들을 모두 수임하며 그 바닥에서 유명세를 떨친 탓에 3년을 근무하는 동안 회사는 나날이 커져갔고, 입사 초기와 비교해 연봉은 어느새 1000만 원가량이 올라 있었다. 3년 가까이 근무했기에 업무 역시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져만 가던, 내가 아주 나태해질 대로 나태해진 시점이었다.


그즈음, 이직을 준비하느라 바빠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게 됐는데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하루에 몇 시간씩 컴퓨터로 업무 보고 그런 건 진짜 좀이 쑤셔서 못하겠더라고. 나는 사람 만나고, 다른 사람한테 내가 경험해 본 좋은 걸 추천해 주고 그 사람이 그걸 마음에 들어 하면 그렇게 뿌듯하더라.’


친구는 백화점에서 와인을 판매했다. 원래는 행정학을 전공하고 전공을 살려서 번듯한 직장에 입사를 했었는데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별안간 와인이 너무 좋다며 퇴사를 하고 와인 업계에 뛰어든 대범한 인물이었다.


사람 대하는 일이 고되진 않을까, 혹여 안정적인 전 직장을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들은 너무나도 뜻밖의 얘기에 친구를 바라봤다. 그 얘기를 하는 친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 나는 '그래? 퇴사하길 진짜 잘했네.’라는 시답지 않은 대답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 로펌에서 바이럴 마케터로 보낸 3년을 돌아보면 확실히 신입 기자 때처럼 허둥지둥 서툴던 모습의 나는 없었다. 어수룩하고 미숙한 모습보다는 노련한 직장인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


높은 연봉, 야근이 없는 삶,

3년을 매일 같이 반복한 탓에 이제는 내가 충분히 핸들링할 수 있는 난이도의 업무들.


그렇지만 왜인지 늘 퍼즐 조각 하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친구의 얘기를 듣자마자 내가 잃어버린 그 조각이 뭔지 그제야 알아챌 수 있었다.


재미없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취감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는 거였다.


매일 엇비슷한 난이도의 업무를 기계처럼 해내고,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이 결국은 범죄자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비호하는 데에 쓰이다니.


편안함에 안주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 보기 시작한 이 시기부터 약 석 달 동안 나는 매일을 정말 심각하게 퇴사에 대해 고민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 건지 이 직장마저 퇴사를 하면 나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실패자가 될 것 같은 느낌에 사표를 썼다 찢었다 반복했고, 어느 날 밤은 잘 자다가 갑자기 깨 울기도 했다.


익숙해져 버린 생활, 익숙해진 업무, 3년간 정이 들 대로 들어버린 동료들, 어딘가에 발을 굳게 붙이고 서있다는 안정감.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때는 '덕업 일치' 따위의 생각은 길바닥에 버린 지 오래로, 정말 생존이 달린 심정으로 고민했다.


그렇게 무수한 밤을 고민하고도 아주 어렵게, 두 번째 직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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