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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 Feb 10. 2022

카카오 프로젝트 100 서비스 종료에 부쳐

시즌2 참여 당시 썼던 Day 1~Day 62까지의 서비스 리뷰


오늘 받은 플백 종료 카톡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아쉬운 마음에 외장하드를 열었다. 과거에 썼던 플백 참여 소회다. 언젠가 브런치에 올리려고는 했지만 서비스 종료 시점에 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또 하나의 서비스가 사라지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 


베타 서비스였다지만 나에게는 알파였어요. 플백 안녕




2020.09.07 Day 1

#카카오 프로젝트 100 #하얀백지 

하얀 백지가 가장 섹시해보인다. 씀의 공백을 건너 당도한 이 시점에 새롭게 시작한 100일 마감 도장찍기 프로젝트의 첫 인증을 지키겠다고 반자발적 강제로 워드 문서를 켰다. 뭘 쓸까 하다가 방금 들은 태민 앨범의 이미지를 몇 자 적어 나갔다. 아, 깜냥이 안 되어서 더는 못 쓰겠다, 하다가 첫 문장부터 다시 읽으면서 문장과 문장 사이를 채우고, 단어와 단어 사이를 메꾸고 하다 보니 메모 수준이었던 처음 글에 단락이 맺히고 구조가 생겼다. 매일 100일 마감 스탬프를 채우겠다고 어떻게든 하얀 노트북 화면을 마주할 2일차의 나, 3일차의 나, 52일차의 나, 99일차의 나를 상상하니까 하얀 백지는 물론 안경 낀 눈으로 그를 마주하고 있을 내가 너무 섹시해 죽겠는 거다. (자기 모에화의 순간. Day31에 다시 읽으니 너무 웃긴다.) 작가는 늘 쓰고 있는 사람이라고 나 스스로 정의하곤 했었다. 어느 날에든 어디서나 쓰고 있는 사람. 쓰고 있지 않더라도 늘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는 사람. 그게 내가 생각하는 작가고 여전히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9월 7일 월요일부터 12월 15일까지, 나는 100일 마감 도장으로 인증될 ‘쓰는 사람’이다. 


2020.09.08 Day 2

#매일마감스탬프 #인증성공

매일 마감 스탬프를 찍는 게 참 대단한 게, 매일의 마감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책상 앞에 앉게 되고, 무던히 빈 문서를 켜두게 만든다. 하기 싫다는 생각은 잠깐도 들지 않는다. 그저 오늘은 무엇을 쓸까, 뭘로 운을 띄워볼까 곰곰해하며 노트북 전원을 켜고, MS워드 아이콘을 더블클릭하고, 언제든 Ctrl+S를 눌러 저장할 수 있도록 미리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해두고, 하얀 화면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얀 화면을 바라보는 오늘의 기분은, ‘오늘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흘려보낼지 나조차 궁금하다’였다. 몇 시간 뒤에 이 하얀 화면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지, 여러 장 나풀 댈 그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하얀 화면을 바라보던 오늘의 기분은 막막함보다는 즐거움과 기대감이었다. 아름다운 태민이를 봐서 그런가, 타인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해서 동력으로 삼는 게 실로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하고 나조차도 낯설다. 이 발견의 기쁨이 불변의 것은 아니니 흐뭇할 수 있을 때 실컷 흐뭇해할 것이다. 내 마음에 가난함이 찾아오기 전에. 


2020.09.09 Day 3

#매일마감스탬프 #인증미완성

오늘은 간발의 차이로 마감 도장을 찍는 데 실패했다. 자정까지가 인증 마감이라 생각하고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들추지 않을 시집부터 펴서 시 읽기 프로젝트 인증부터 해냈다. 그러곤 어제 새벽에 쓰던 워드 문서를 열어 찰칵하곤 마감 스탬프 화면의 인증 버튼을 누른 순간 ‘지금은 인증 시간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직면한다. 영문도 모르고 어안이 벙벙. 23시 30분이 마감이었고, 그로부터 내일이 될 자정까지는 30분의 휴지기가 있음을 알아챘다. 눈 뜨자마자 외출에 돌아와서 쉬느라 오늘은 인증을 끝 간 데 까지 미루었으니, 오늘 새벽에 조금 쓰고 내일은 저녁쯤에 인증을 올려보자. 밤까지 끌기 전에. 


2020.09.09 Day 3

#시즌2와 시즌3의 체감 비교

지난 상반기 플백 인증 프로젝트는 크고 느슨한 활황 모임 같았는데, 이번 하반기 플백 인증은 성격을 드러내지 않고 잘 모르는 조용한 이들의 소모임 같은 느낌이다. 어느 것이 더 좋다기보다는, 이 확연한 차이가 매니저의 성향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참여한 하반기 프로젝트의 매니저님들은 나이브함을 추구하므로. 


2020.10.05 Day 29

#연결 #온택트 #언택트 #카카오프로젝트100

올해 되게 여러 가지로 연결되려고 했다. 혼자서라도 고용지원센터를 찾아서 학원 수업을 3가지나 들었고, 카카오프로젝트100의 시즌2, 시즌3 멤버로도 참여했다. 카카오프로젝트100이 좋은 점. 어떻게든 인증 시간 전에 책상에 앉게 해 준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참여하는 프로젝트 두 가지가 텍스트를 읽거나 쓴 것을 인증하는 것이기에 인증하기 위해서라도 책상에 앉는 (혹은 그 비슷하게 폼을 잡는) 의식이 필요한데, 일단 앉으면 뭐라도 하게 되기에  나를 책상에 앉힌다는 그 루틴의 힘이 정말 크다. 인증할 마음으로 앉으면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한 줄은 쓴다. 한 줄은 읽는다. (Day40. 어떻게든 책상에 앉아서 39일 동안 57000자를 썼다. 하루하루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2020.10.06 Day 30

매일매일 형편없는 초고만 쌓여가고 있는 모습이네. 형편없는 초고라도 좋다. 쌓을 때 의미가 생긴다. (Day40. 한 달 조금 넘게 모아서 검토하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하냐. 아무렴 의미가 생겼지. 의미가 생기고도 말았지.) 


2020.10.07 Day 31

#카카오프로젝트100 #Day31중간점검 #플백을대하는우리들의자세변화

카카오프로젝트100은 Day1의 설렘으로 첫 인증을 남긴 후 Day4~6일까지가 결의에 찬 날이고, 주말을 끼고 Day7을 지나면 한풀 꺾여 게을러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의지가 한풀 꺾여서 겨우 겨우 막차로 인증하기를 열흘쯤 하고 나면 인증을 빼먹는 때가 오는데 이때가 바로 Day16~20쯤이다. 게을렀던 과오를 반성하고 약간 정신을 차리며 인증을 꼬박꼬박 챙기려는 노력과 텐션이 슬그머니 일상의 과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 Day29~30쯤 된다. 벌써 한 달이 지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 달이 지나다니!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남에 당황하기도 하고, 한 달 동안 뭔가 이룬 듯 아무것도 못 이룬 듯한 미적지근한 기분이 드는 시점. 이런 식으로 두 번 더 반복하고 열흘이 지나면 100일 프로젝트가 끝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며 심기일전하게 된다. 두 번째 30일은 더 알차게 보내자는 심산으로 Day 30~31에는 마음가짐과 행동가짐을 재정비하게 된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이제 막 Day 30을 넘겨서 여기까지의 소회를 자세하게 써보았다. 2020년 봄에서 여름까지 이어진 지난 카카오 프로젝트 시즌2를 되돌아보면 다시 나태 지옥의 고비는 41일쯤 또 한 번 올 것이고, 50일쯤 반환점을 돌았다는 감회에 젖어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게 될 테다. 63일쯤부터 또 한 번 해이해질 것이고 70일에서 80일쯤에는 ‘이 프로젝트 언제 끝나나’ 하는 마음과 ‘남은 시간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옥신각신하며 90일로 달려간다. 90일이 넘으면 이제 꾸준히 인증하는 사람은 소수만 남고, 일찌감치 인증을 포기한 사람들이 갑자기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돌아오는 일도 없다. 이제 남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90번대의 마지막 1, 2, 3, 4를 카운트하며 두 자리 숫자가 세 자리 숫자가 되는 그날에 다가간다. 무언가를 마무리한다는 설렘은 시작할 때의 설렘과는 무게와 질감이 다르다. 내가 나의 방식으로, 다소 부족하더라도 이 100일을 완수했다는 감각은 내 시간 어딘가에 분명하게 남는다. 그리고 100일을 완수한 이들은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자유 시간을 자신만의 규칙으로 유지해보려다가 잘 안되기를 반복하며 슬슬 다음 시즌이 언제 시작될지 궁금해한다. 한 번 시즌을 완수한 사람들이 다시 플백을 찾게 되는 이유. 특별하지 않은 듯해도 대체할 만한 것을 찾아도 나에게는 플백만 한 게 없는 것 같다. 이만한 페이스메이커, 러닝메이트도 없다. 


2020.10.11 Day 35

#매일글쓰기 #카카오프로젝트100 #습관은힘이세다

매일, 조금씩, 계속. 글쓰기에 있어서 이 세 가지는 정말 힘이 세다. 여기에 ‘같은 시간에’라는 조건을 붙이면 막강해진다. 계속 쌓을 수 있게 되고 나중엔 그 쌓은 게 무엇이 되었는지 조망할 수 있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 자체로 큰 산처럼 힘이 되고 만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시작도 못하겠다면,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매일 한 문장씩이라도 남기면 그게 추동력이 되어서 쓸 수 있게 되더라. 매일 책상 앞에 앉은 나 자신의 힘을 믿어본 거지. 스스로에게 검증한 게 되었고 말이야. 

그 감각 알려나? 신나게 다다다다 쓰고 나서 습관적으로 ctrl+s 를 누를 때 피아노 건반 튕기듯 왼손가락 튕겨나갈 때의 텐션 말이야. (새끼손가락은 ctrl, 검지는 s. BPM130. 당가당 리듬으로…) 


2020.10.16 Day 40

카카오 프로젝트 100 <나 혼자 작업한다 100일 뒤 찐이 되자> 인증 40일이 되는 오늘은, 그동안 써놓은 글을 분류하고 작업물을 꿰고 덧대는 작업을 한다. 39일간의 원고 검토. 손에 닿는 가장 빠른 이야기부터 썼던 것 같다. 일기처럼. 이걸 발전시켜야 할 때.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또 메모도 해두고 말야. 


2020.10.26 Day 50

#카카오프로젝트100 #50일차 #중간점검 #중간회고

플백 50일차. 남은 날도 50일. 지나온 날 50일. 지나온 50일의 인증 기록을 하나하나 들어가서 읽어보며 그 시간을 되새겨보기도 하고, 마음가짐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짚어본다. 시 읽기 인증 프로젝트와 작업 인증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둘 다 이미 30~40일경부터 의미 있는 성취가 드러나고 있다. 시 읽기 인증을 하면서 한동안 못 읽고 있던 시집을 독파 중. 여러 시집에서 발췌해 읽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시집 한 권을 매일 한편씩 읽고 있다. 하루에 후루룩 여러 편을 읽는 것보다 시 한 편을 곱씹으면서 읽을 때 깊은 여운이 머무는 것 같다. 의리로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다시금 시 읽기에 감동을 얻고 있으므로 이미 만족스럽다. 한편 글쓰기 작업 인증 프로젝트를 하면서 달성한 정말 소중한 성취는 현재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잡히지도 않을 미래의 허상, 지나온 과거의 잔여물을 부여잡는 글이 최근 3년간 내 글쓰기의 80프로를 차지했던 것 같다. 현재는 언제나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였고,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과거의 의미 또는 의의를 성찰하는 글을 한동안 써 버릇했던 것. 현재에 대해서는 안 쓰다 보니 못 쓰고 있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 현재가 너무 사소해서 사소한 글이 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인정한다. '현재를 쓰자!'는 목표대로 처음 30여 일은 그날그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 편하게 시작한 글이 어디까지 나를 데려가는지도 봤고, 손 가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단편 단편 늘어놓은 문장들이 한 달에 걸쳐 선형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단 걸 초고를 취합하면서 발견하기도 했다.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현재에도 몇 가지 일관된 주제가 있었던 것이다. 적든 많든 매일 쓰고, 그걸 검토하면서 알아챌 수 있었다. 뭔 소리를 떠드는 거지 하며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과정으로 썼던 글도 나중에 다시 보니 와, 생각보다 괜찮은데? 하고 감탄하던 날도 있었다. 매일 쓰는 글이 진짜라고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쓰고 싶은 걸 쓰다 보니 장르의 벽도 한 발짝 넘게 됐다. 현재를 쓰기 시작했다는 게 첫 번째 성과라면, 초엽편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게 두 번째 성과다. 그리고 장면집을 만들 원고를 쓰기 시작한 게 세 번째 성과. 50일인 오늘 거의 7만 자의 초고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남은 50일은 이것들을 다듬어서 아름다운 작업물의 섬을 향해 순항해갈 것이다. 행복해. 가자! 모나고 못나도 귀여운 내 작업물들이 있는 섬으로! 그곳으로! 


2020.10.30 Day 54

50일. 반환점을 돌았다는 실감. 반을 넘으면 다시 불탈 것 같지만 나는 다시 해이해졌다. 반환점을 돈다는 것은 다시 1에서 시작한다는 것. 51일부터 다시 1일로 생각해야 한다. 


2020.11.07 Day 62

#카카오프로젝트100 #중간기록

11월이 시작되던 56일차부터 62일차(11/7)인 오늘까지 작업을 많이 놓쳤다. 세상사에서는 좋아하던 희극인의 부고, 어떤 유명 인디뮤지션의 범죄 사실, 이 두 가지가 큰 충격이었고 마음이 정말 어지러웠다. 사생활에서는 계속 약속을 잡고 사람을 만날 일이 있다 보니 집에 오면 풀어져있기 바빴다. 잘 놀기는 했지만, 이런 시간도 무척 필요하기도 하지만, 작업할 때와는 다른 활력을 사람으로부터 얻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마음 한 구석은 계속 불편하기 마련. 최근 3일은 작업을 아예 놓았더니 다시 돌아오기가, 마음 붙이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62일차인 오늘. 하루 종일 생각만 하다가 밤 열 시 넘은 시각에 그래도 기어이 자리에 앉아봤다. 작업해야 하는데 꼼짝하기 싫을 때,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무력감이 끌어당길 때 그래도 마음을 고쳐 먹고 앉아서 한 발짝이라도 건너가 본다. 



이때 발견한 작은 씨앗을 올겨울에 다시 심어 곧 두 번째 책이 나옵니다. 

나에게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근력을 심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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