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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Ko Sep 15. 2016

아침 일찍 스페인  광장으로 향하다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마흔 번째 이야기

황홀하다던 세비야 스페인 광장의 야경을 담지 못해서였을까? 유난히도 밤잠을 설치고 난 후, 어제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세비야의 날씨는 여전히 흐렸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시내 구경도 할 겸, 어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언제 어디서나 구글맵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는 배낭여행을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그래 봐야 스마트폰이 나온 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제 세비야 도착해서 숙소로 가는 길에 지나쳤던 것 같은 이 건물은 세비야 투우장이다. 커다란 빨간 천을 펄럭이며 황소와 싸우는 투우는 '정열의 스페인'을 상징하는 스포츠다. 하지만 투우의 본고장인 이곳, 스페인에서조차 지금은 그 잔인함과 위험성 때문에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투우를 법으로 금지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투우 경기가 열리는 곳은 바로 이곳, 세비야와 마드리드 뿐. 하지만 그것조차도 경기가 열리는 시기가 제한적이니, 혹시라도 투우에 관심이 있다면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미리미리 일정을 챙겨두시길,  

투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안달루시아 주정부 청사가 위치해 있다. 나중에 검색을 해 보니, 이 으리으리한 건물은 페르난도 7세의 왕녀인 마리아 루이사 공주가 살았던 곳으로 산텔모 궁전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당시에는 우연히 발견한 이 건물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알 턱이 없다. 그저 유명한 건물이겠거니 하며, 연신 셔터만 눌러댔을 뿐,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가 가만히 보니, 산텔모 궁전의 지붕 끝자락을 따라 다양한 모습을 한 사람들의 석상이 놓여 있었다. 중세 시대 기사나 성직자 같기도 하고, 스페인 또는 세비야 지역의 영웅들 같기도 하다. 아직까지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로라도 좀 알려주세요. ^^;; 

투우장과 산텔모 궁전을 지나고 나니 어느새 낯익은 건물 히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제 스페인 광장으로 가는 길에 만났던 알폰소 트레쎄 호텔이다. 트레쎄는 라틴어로 13을 의미하는데, 19세기 후반 스페인을 통치했던 알폰소 13세의 이름을 딴 알폰소 트레쎄 호텔은 숙박비가 하루에 40만 원에 육박하는 세비야 최고의 럭셔리 호텔이다. 하룻밤에 40만 원이라... 나중에라도 부자가 된다면 이런 호텔에서 하루쯤 묵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드디어 도착한 스페인 광장, 광장 양쪽으로 높게 솟은 탑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스페인 광장은 1929년, '이베로 아메리칸 박람회'를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첫인상은 마치 중세 시대의 르네상스 양식과 비슷해 보였는데, 생각보다 역사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전 세계에서 스페인 광장만큼 많이 쓰이는 지명이 있을까? 스페인의 각 도시는 물론 미국,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에도 '스페인 광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소가 여럿 있다. 이처럼 수많은 스페인 광장 중에서도 이곳,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이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는 모 CF 방송에서 김태희가 플라멩코에 맞춰 춤을 추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광장이 너무 커서 카메라 앵글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파노라마 촬영이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당시에 가져갔던 핸드폰이 워낙 구형이라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똑딱이 디카로는 아무리 용을 써봐도 스페인 광장의 웅장함을 담기가 역부족이었다. 올림푸스 카메라였다면, 좀 달랐으려나? 

카메라도 카메라지만 더욱 아쉬웠던 것은 바로 날씨! 하늘이 잔뜩 찌푸린 탓에 김태희가 춤추던 그 생기발랄한 광장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주 조금씩이었지만 비가 내리기도 했다. 내게 김태희를 빼앗아 가다니, 이래저래 비가 너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3월 하순, 부활절 전후 기간에는 스페인 남부지역에 비가 자주 내린다고 한다. 강수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하루 종일 흐린 날이 많으니,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면 이 기간은 되도록 피하자. 

광장의 1층 외벽에는 스페인 여러 도시의 깃발과 함께 각 도시를 상징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스페인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그림을 감상하며 그 의미를 유추하는 것도 제법 재미있을 것 같다. 스페인 도시에 관해서라면 프리메라리가에 나오는 축구팀 이름 몇 개 아는 정도인 나조차도 아는 도시가 나왔을 때마가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밖에서 봤을 때에는 잘 몰랐는데, 안으로 들어와 보니, '반원 모양의 건물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장을 받치는 기둥 사이로 보이는 외벽은 흐린 날씨였지만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는데, 그늘진 건물 내부와 이루는 대조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스페인 광장에 머무르던 순간에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은데, 일 년 여의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니, 그저 아름다웠다는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흐릿해졌을 수도 있고, 그때의 생각이 글로 표현하기에는 다소 복잡 미묘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진 속 풍경이 실제 스페인 광장의 위용에 미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지금 와서는 그때,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을 거닐던 그 순간이 너무도 그리워진다. 다시금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다시 그곳을 찾아 광장을 여유롭게 걸어봐야겠다. 아마도 그 순간의 하늘은 예전보다 조금 더 높고 화창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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