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농사
앞으로 한 달 동안의 농사 상황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그때그때 상황은 블로그에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한 달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요.
5월의 주연은 고추, 열무, 시금치, 마늘, 양파이고요 그 외 조연들로는 오이, 호박, 토마토, 가지, 파프리카 등이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고추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모두 한 편에 다루려고 했는데, 저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거죠. 고추 얘기만 해도 하룻밤 꼴딱 샐 판입니다.
고추는 저희가 재배하는 작물 중에 가장 손이 많이 갑니다. 아니, 상대평가도 필요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손이 많이 갑니다. 각종 병충해에 취약하고 물 관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미네랄 결핍에도 크게 반응합니다.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일일이 지지대도 세워줘야 하고요. 다른 작물들은 마지막 한 번에 일괄 수확하지만 고추는 한 여름 뙤약볕에 몇 번이고 수확해서 씻고 건조기에 말려야 합니다.
정말 일의 양이 어마어마한데요. 동네 분들이나 지인들이 굳이 그걸 왜 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요. 한국 사람에게 고춧가루는 정말 중요한 식재료 아니겠습니까? 고춧가루 없이 어떻게 사나요. 가족들에게도 필수적으로 필요한 품목이기도 하고요. 이 놈의 고추 진짜 도저히 못 하겠다 할 때까지는 아마도 재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년에는 4월 29일에 고추 모종 사장님이 물 주기 귀찮다고 갑자기 가져다주셔서 얼떨결에 4월 30일에 바로 심었는데요. 그러고 일주일을 조마조마 떨었습니다. 고추 심는 날짜는 낮 기온보다 밤 기온이 더 중요합니다. 최저 기온이 두 자릿수 정도가 될 때 심어야 합니다. 냉해를 입기 쉽거든요. 작년에는 조금 일찍 심은 바람에 냉해도 좀 입었습니다. 올해는 4월 27일에 받아서 일주일 정도 햇볕 적응을 시켜 줬고요, 밤에는 하우스 안에 넣어 냉해를 입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고 5월 5일에 심었습니다.
올해는 또 유튜브에서 뿌리를 조금 찢어서 심어주면 뿌리가 왕성하게 발달한다고 하여 일일이 뿌리를 찢어 주었습니다. 고추 모종을 모종판에서 꺼내면 발달한 뿌리가 갈 곳이 없어서 돌돌돌 말려 있습니다. 그 부분을 찢어주면 새 뿌리를 내리느라 뿌리가 더 풍성해진다는 원리인데요. 결과적으로 올해 좀 망했습니다. 요즘 매일 남편에게 구박을 받고 있어요. 왜냐하면 뿌리가 적당히 찢긴 애들은 너무 잘 커서 탈이고요, 아마도 너무 심하게 뿌리가 찢긴 것 같은 애들은 여전히 비리비리하기 때문입니다.
농사에서 표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실 겁니다. 다양성 존중은 인간 교육에서 중요한 거고요. 농사에서 작물이 다양한 크기로 자라는 건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내가 초짜요- 광고하는 것과 진배없달까요. 초짜니까 초짜 티 나는 건 괜찮은데요, 이렇게 크기가 제 멋대로가 되면 이후의 작업에 차질이 생깁니다. 저희는 올해 고추를 지지해주는 방법으로 고추 망을 설치했는데요. 고추가 얼추 자라면 자란 만큼 고추 망을 위로 올려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중간에 키가 작달막한 애들이 끼어 있으니 이건 올릴 수도 그냥 둘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남편이 요즘 매일 고추를 볼 때마다 내년에는 찢지 말고 그대로 심자고 귀에 인이 박히듯 얘기하는데요. 내년에는 찢지 말고 흙을 털어서 돌돌 말린 뿌리를 펴주는 방식으로 하자, 내가 균일하게 흙을 잘 털어보겠다, 솔직히 잘 찢긴 애들은 작년 같은 시기에 비해 월등하게 잘 자라지 않았느냐, 내년에도 들쭉날쭉하면 그다음 해에는 깨끗이 포기하겠다고 응대하고 있습니다. 저보고 똥고집이라며 혀를 내두르는데요, 제 입장에서는 남편이 똥고집이죠. 잘 찢긴 애들은 정말 눈에 띄게 잘 자라거든요. 균일하게만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5일에 정식하고 6일에 지지대를 박아 주고 8일에 고추 망을 씌웠습니다. 지지대는 고추를 심고 뿌리가 자라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설치해야 하고요. 10일에는 방아다리에 달린 작은 고추들을 떼어 내었습니다. 저희는 모종을 받았을 때부터 이미 방아다리에 고추가 달려 있었고요. 모종 사장님은 떼지 말고 그대로 키우라고 하셨지만 유튜브로 자료를 이것저것 찾아보고 떼기로 결정했어요. 모종이 늙은 편에 속해서 방아다리 고추를 떼어 줘야 고추나무 성장이 시작될 것 같아서요.
13일에는 고추밭에 물을 줬습니다. 노지 밭이고 따로 점적호스를 설치하지 못해서 일일이 수동으로 공급했어요. 아시겠지만 5월 한 달 내내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페트병 뚜껑에 구멍을 두 개 내고 뒤집어서 고추밭에 세워서 물을 부어줬습니다. 작년에 호스로 바로 두둑에 꽂아서 주니 수압이 세서 구멍이 심하게 뚫리더군요. 그래서 올해는 몸으로 줬습니다. 물은 22일에도 한 번 더 줬습니다. 비가 계속 안 와서요. 그러고 25일에는 요소 비료로 1차 추비를 했습니다.
저희 고추는 지금 두세 개 정도씩 고추를 달았고요, 고추 크기도 꽤 커져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내일하는 것 같은 고추들도 더러 있고요. 얼마 전에 곁순을 따 줬는데 그건 6월의 일이니 월간 농사 6월에서 또 기록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