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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재천 Apr 16. 2018

인도의 풍습 - 사티(1)


<사진출처 : 구글 이미지>


나마스떼, 인디아입니다!



2017. 09. 12


고대 인도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현재의 수준만큼은 아닐지라도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조선시대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안주인으로써 집안을 다스렸으며,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장남의 의견을 따랐다.


고대 인도 왕국은

왕족 간에 혼인을 하였는데 그때 여성이 스스로 배우자를 결정하기도 하였다.

1236년 델리 왕조의 이슬람정권하에서 술탄 ‘일투미쉬’는 여러 자녀 중에서 총명한 딸 ‘라지야’에게 술탄자리를 물려주기도 하였다.


물론, 그녀는 오빠들의 노골적인 반대에 부딪쳤고, 이슬람 사제들은 이슬람사회의 남성 전통을 뒤흔들 획기적인 이 사건을 간과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술탄의 자리에 오른 그녀는 제위 3년 만(1239년)에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암살당해야만 했다.


고대 인도의 베다(Veda)문명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가장 이상적인 부인상으로 ‘사티 여신’이 있으며 ‘사티’라는 인습이 전해오고 있었다.

이것은 베다(Veda)후기 문명에서부터 알려졌는데, 왕족이 죽어서 화장을 할 때면 부인이 불 속으로 뛰어들어 같이 화장을 하는 것이다.(이 인습은 중국의 현장법사(602-664)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지기도 하였다)


14C 중엽에 남인도 지역에 세운 ‘비자야나가라’ 왕국에서는 왕권이 강화됨에 따라 ‘사티’제도가 성행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15C중반에 왕이 죽자 400-500백명가량의 후궁들이 함께 화장을 당했다는 기록이 전해져 온다.


다시 말해서,

고대부터 내려온 인도의 지배자 계층은 왕권 강화의 한수단으로 남편이 죽으면 부인이 따라 죽는 희생을 미담으로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마스떼,

즐거운 하루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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