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문장

속도보다 중요한 것: 벡터가 일러주는 삶의 방향

by 연필


아인슈타인과 인펠트는 <물리학의 진화The Evolution of Physics>에서

수레를 미는 예시를 들며

‘힘(force)’이라는 물리량을 설명한다.


"In order to characterize a force it is not sufficient to state how hard we push the cart; we must also say in which direction we push.”

힘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수레를 얼마나 세게 밀었는가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힘이 어느 방향을 향해 작용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 Albert Einstein & Leopold Infeld, The Evolution of Physics, Ch. I, 3, p. 19


이 문장을 읽으며 내 머릿속에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밀고 있는 수레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힘은 단순한 크기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반드시 방향이라는 속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는 순간,

과학은 더 이상 숫자의 학문이 아니라

의미의 학문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열심히 일했는지를 이야기하곤 한다.

몇 시간 일했고, 몇 가지 과제를 해냈고,

얼마나 몰두했는지를 나열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안도한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작용했을까?

수레를 세게 밀어도 그 방향이 벽이라면,

우리는 오히려 더 큰 충돌을 겪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실험을 통해 이 원리를 보여준다.

직선으로 달리던 공에 수직 방향으로 힘을 가하면, 공의 운동 방향은 바뀐다.


“The final motion will be along neither of these two lines, but somewhere between them…”
최종적인 운동은 두 선 중 어느 쪽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즉 중간 지점을 향하게 된다.

— Albert Einstein & Leopold Infeld, The Evolution of Physics, Ch. I, 3, p. 13


즉, 힘은 단지 속력만이 아니라 방향까지도 바꾸는 존재다.

명제는 단순한 과학적 진술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탁월한 은유로 다가온다.


외부의 힘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꾼다.
때로는 직선처럼 나아가던 우리의 궤도를 완전히 틀어버리기도 한다.


벡터라는 낯선 언어가 일깨우는 것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이 일상의 언어를 빌려오되,

그 언어를 더 명확하고 정밀하게 다듬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Scientific concepts often begin with those used in ordinary language… but they develop quite differently. They are transformed and lose the ambiguity associated with them in ordinary language, gaining in rigorousness.”

과학적 개념은 흔히 일상 언어에서 쓰이는 표현에서 출발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다. 그 개념들은 변형되고, 일상 언어에 내포된 모호함을 벗어버리며, 더욱 엄밀한 성격을 갖게 된다.

— Albert Einstein & Leopold Infeld, The Evolution of Physics, Ch. I, 3, p. 14


이 문장은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선언처럼 읽힌다.


일상에서 우리가 보통 '속력(speed)과 속도(velocity)'를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많은 개념을 애매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과학은 그 모호함을 걷어내고,

정의를 정교하게 가다듬는다.

마치 흐릿한 렌즈에 초점을 맞추듯,

개념의 방향을 선명히 하는 작업이다.


내 삶도 그렇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제자리일 때가 있다.


혹은 격렬하게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면 방향이

완전히 빗나가 있던 때도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은 그럴 때 말해준다.


“속력만 중요한 게 아니다. 방향도 중요하다.”


아이 교육의 벡터값을 묻다


아인슈타인은 벡터를

“크기와 방향을 모두 갖는 물리량”이라 정의하며,

이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상징으로

화살표(→) 를 제안한다.


길이로는 크기를,

방향으로는 운동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이 화살표는

삶의 여정을 향한

우리 각자의 자세를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벡터를 가지고 살아간다.

문제는 그 벡터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다.


사이먼 시넥은 <나는 왜 이일을 하는가Start With Why>에서 이렇게 말한다.


“Direction is more important than speed. Many are going nowhere fast.”

방향은 속도보다 중요하다. 많은 이들이 빠르게, 그러나 아무 목적지도 없이 달려가고 있다.


부모로서 아이를 ‘얼마나 빠르게’ 성장시키느냐에 몰두하다 보면,

‘어디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놓치기 쉽다.


공부도, 훈육도, 경험도 모두 ‘힘’이다.


그런데 그 힘이 어디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살피지 않으면

결국 아이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릴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말한다.

“The external force is also a vector, and must have the same direction as the change in velocity.”

외부의 힘 또한 벡터이기에, 그것은 속도 변화가 향하는 바로 그 방향과 일치해야 한다.

— Albert Einstein & Leopold Infeld, The Evolution of Physics, Ch. I, 3, p. 19


아이의 성장에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

즉 어른들의 말, 행동, 환경이

아이의 방향을 바꾸는 ‘벡터’가 된다면,

우리는 그 방향이 정말 옳은지를

늘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 문장처럼, 나의 벡터를 다시 묻다


아인슈타인의 문장을 다시 떠올려본다.


“Here the sceptic may remark that he sees no advantage in the introduction of vectors…”
“…but we shall see that just this strange language leads to an important generalization.”

이 지점에서 회의론자는 벡터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얻는 게 과연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 하지만 우리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이 낯설고 복잡해 보이는 언어야말로, 물리학의 사고를 한 단계 더 확장시키는 핵심적인 도구라는 것을.

— Albert Einstein & Leopold Infeld, The Evolution of Physics, Ch. I, 3, p. 19


지금은 복잡해 보이는 벡터라는 개념이

앞으로 과학을 새롭게 이해하게 해줄 열쇠가 되듯이,

우리 삶에서도 ‘방향’이라는 낯선 질문은

언젠가 삶의 구조 전체를 바꿀 근본이 된다.


'오늘 나의 벡터값은 어떤가?'하고 자문해본다.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조심스레 꺼내 본다.


모호하게 흘러가던 일상을
조금 더 명료하고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명료한 '과학의 언어'
그저 바쁘게만 살아왔던 내 삶에 천천히,

그러나 진지하게 적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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