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확인 사살 중-
세계 여행을 떠난 지 50일, 네 팀의 이민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행을 떠난 이유는 남편과 결혼 즈음해서 약속을 했기 때문이고,
이민자 인터뷰를 하려고 했던 건 '부부세계여행'이란 컨셉은 너무 진부했기 때문이다.
본업이 글도 쓰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인 지라 우리에겐 여행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 결과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이민' 혹은 '탈 서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고,
우리는 여행을 하며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만나고자 했다.
여행 50일.
'세계여행'이라 하기엔 아직 부족한 기간이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우리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우리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민'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다른 나라에 사는 것과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것.
- 이민의 첫 조건, 저녁이 있는 삶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을 떠나 여유가 있어지고,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한국에서의 삶이 그만큼 고되고 힘들었다고.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들어선 순간부터 평탄한 직장생활이란 건 없었다. '칼퇴'라는 단어는 딴 나라 얘기였고, '대졸 신입 연봉' 따위는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다행히 하고 싶은 게 많았고, 인맥 관리를 잘 한지라 타 업종이지만 이직도 수월하게 했고, 그렇게 사회 경험이 8년 차쯤 되자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조직에서는 굳이 내가 일을 만들어하지 않아도 되며, 어차피 돈은 내가 아닌 사장님을 위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다.
몇 번의 이직 끝에 나는 프리랜서를 할 수 있는 업종으로 전환을 했고, 퇴사 후 프리랜서 일을 하며 조직에 있을 때 보다 높은 급여(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에 비하면 훨씬 낮은 연봉이지만 내 기준에 만족스러운 급여)와 칼퇴근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아마도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 생활을 몇 년은 더 했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운이 좋아서 일 수도 있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는 건 너무나 좋았다.
이 생활을 계속한다면 6시 혹은 7시 칼퇴근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굳이 왜, 내가 해외에 나가야 할까.
- 이민의 두 번째 조건, 여유가 있는 삶
여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여유라 해야 할까. 서양의 대부분의 도시는 오후 6~8시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다. 대학생 때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 홈스테이 주인에게 한국은 새벽 6시까지 술집이 영업한다고 얘기하니 주인아주머니는 나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 시절 저녁 8시에 펍에서 쫓겨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녁 5시, 6시에 퇴근하고 돌아가면 여유 있는 삶이 만들어 질까?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행복한 지옥, 00은 지루한 천국'이라고. 00에는 호주, 독일, 미국, 캐나다 등 대부분의 서양 국가가 들어간다.
친구와 짧게 하는 유럽여행이 아닌, 남편과 길게 하는 여행이다 보니 저녁 시간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남편과 내가 이런 여유로움을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남편과 나는 지루한 천국 스타일은 아니다.
서울에 있을 때도 우리는 각자의 스케줄로 바빴다. 남편은 퇴근 후 각종 강연, 행사, 모임 그리고 개인적인 운동을 하기에도 벅찬 한 주를 보냈고, 나 또한 일주일에 네 번 이상은 사람들을 만나며 저녁 시간을 보냈기에 넘쳐나는 시간 대비 할 게 없는 해외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한국이 충분히 재미있는데, 나가 살아야 할까.
- 이민의 세 번째 조건, 자녀 교육
최근까지 나는 귀촌에 대한 꿈이 있었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서울을 떠나 조그맣게 텃밭이나 가꾸고 동네 사람들을 만나며 지내는 생활 말이다. 처음 귀촌을 생각했을 땐, 그 중심에 '자녀'가 있었다. 친구들끼리 어느 아파트 사냐고 묻는 아이들 혹은 그들의 부모와 내 아이를 같은 공간에서 지내고 싶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가 어린 시절 방학 때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서 뛰어 놀았듯이, 내 아이도 그런 곳에서 덜 경쟁하며 키우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 귀촌이나 이민이 대안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원천적으로 자녀 계획이 아예 없어져 버렸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내 인생은 거의 끝났다고 봐야 한다. 외국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엄마로서 아이를 최소 2년은 돌봐야 하는 건 세계 어디든 똑같다. 다만 내가 그것을 하기 싫어할 뿐이다. 그러니 이 부분 또한 이민에 대한 메리트가 없어졌다.
- 이민의 네 번째 조건, 노후 보장
이건 조금 문제가 다르다. 사회복지로 따지자면 당연히 유럽 국가로 넘어오는 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세상에, 늙어서 편하자고 몇 년을 고생하는 건 내 인생관과는 맞지 않는 행보다. 나는 '지금을 즐기자' 주의기 때문에.
그렇다고 국민연금이나 연금보험이 나의 노후를 편안하게 해 줄까? 사실 난 연금보험에 가입할 돈도 없다. 그나마 국민연금도 겨우 내고 있는 실정이다.
늙어서 아파도 의료비 걱정 없고, 집 걱정 없이 살고 싶다면 이민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이 즐겁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실천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늙어서의 문제는 더 늙어서 생각하는 게 맞지.
- 결론
앞으로 더 많은 인터뷰이들을 만나면 또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도시를 옮길 때마다 남편에게 묻는다. '여기서 살면 어떨 것 같아?'
이건 나 자신에게 묻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들여다보면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다만 보이지 않는 제도들을 얼마나 알고, 그것들을 간절히 원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것이다. 독일에서 만난 부부의 얘기를 빌리자면 독일은 이사하는 날은 무조건 회사를 쉬게 되어 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감동했던지. 이런 세세한 제도까지 알고 이민을 결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이사하는 날 때문에 이민을 결정할 것인가는 다시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나는 아직 넘쳐나는 저녁 시간을 남편과 둘이 보낼 자신도, 매일 혼자 집에 있거나 산책만 하며 시간을 보낼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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