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써니 Jan 14. 2019

이 세상 누구보다 특별한 엘리자벳

뮤지컬 [엘리자벳]


벌써 몇 번째 보는 '엘리자벳'이라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오랜만에 옥언니의 시원한 노래를 듣겠구나 하는 정도랄까.


집 근처라 평소엔 걸어 다니는 거리지만 미세먼지의 공격으로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인기 뮤지컬답게 로비부터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공연 시작 5분 전,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란스러움은 가시고 객석의 조명이 꺼졌다.






무대 위에 쓰러져 있는 남자, 루케니. 몇 년 만에 그와 다시 만나니 스멀스멀 엘리와의 추억이 조금씩 깨어난다. 낯선 목소리의 정체는 '웃는 남자'의 히어로 박강현, 그는 역시 현대극보다 시대극이 제격이다. 한 없이 부드러웠던 그윈플렌은 어디 가고, 기존의 루케니들과는 또 다른 광기로 극의 쫄깃함을 더한다.


앙칼진 루케니가 아주 위~~~~~대한 사랑을 외치고 나면 묵직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모든 출연진이 한 무대에 오른다. 어두침침하지만 클라이맥스처럼 웅장한 좀비들의 무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처음의 기대 없던 마음은 어디 가고 빨리 토드가 나타나길 애타게 기다린다.


엘리의 결혼식 훼방꾼 토드 등장 (사진출처 : 엘리자벳 홈페이지)


사이드 자리라 첫 등장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토드 대교를 한 걸음 씩 내딛을 때마다 들려오는 느끼한 음색이 '오늘로 보길 잘했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이날의 토드는 뉴비 박형식. 뮤지컬 '보니 앤 클라우드'가 그를 본 마지막 뮤지컬이라 걱정 100%였는데, 역시나 기우였다. 깔끔한 중저음의 목소리는 엘리가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토드를 더 보게 해 달라는 성화에 못 이겨 생긴 걸까. 몇 회를 거듭한 후에 새로 삽입된 '사랑과 죽음의 론도'는 처음엔 왜 생겼나 싶었었는데, 오랜만에 들으니 그 애절한 가사에 마음 하나가 툭, 하고 떨어진다. 토드, 너도 별수 없는 남자로구나.



잊지 마, 널 기다리고 있을게.




엘리와 요제프의 첫 만남 장면은 후루루 넘겨 버리자. 내가 바라는 건 엘리의 결혼식이다. 아이돌이 뮤지컬 한다고 뭐라 하지만, '마지막 춤'만은 역시 아이돌이어야 한다.  한 여잘 사랑하는 두 남자의 뻔하지만 새로운 이야기인 삼각관계에서 신랑보다 한 없이 멋짐을 온몸에 장착하고 '내가 바로 아이돌이다!'를 뿜뿜하며 댄스돌로 변신하는 순간! 이 장면에서만큼은 뮤지컬 배우보다 가수 박형식의 모습이(아마도 김준수 역시) 훨씬 빛을 발한다.


첫날밤을 보내고 하늘하늘 잠옷과 하늘색 스카프 휘날리며 1차로 남편에게 선빵 날리는 엘리자벳- 옥언니는 이번에도 진짜 클라이맥스를 위해 이 부분은 약하게 질러 주신다. 속이 뻥 터지기 직전 간질 맛 나게 끝나는 노래 때문에 이제부터는 1막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기다린다.


단어 그대로 아름다운 엘리자벳 (사진출처 : 엘리자벳 홈페이지)



매력적인 연출 중 하나인 꼭두각시 인형 장면으로 몇 년의 시간을 매끄럽게 순삭 해 버리고, 고부갈등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으면 드디어 엘리자벳의 하이라이트가 찾아온다. 시어머니 편만 드는 못 미더운 남편 대신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엘리자벳- '나보다 더 예쁜 여자는 없다'라고 해도 될 만큼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 꽉 막힌 위장도 뚫을 것 같은 시원하도고 청아한 목소리로 옥언니가 드디어  '나는 나만의 것'을 다시 부른다. 노래를 듣는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의 걱정, 근심, 월요병 따위는 모두 사라진다. 그래, 이 맛에 엘리보는 거지.



난 자유를 원해. 내 주인은 나야



2막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키치, 꼬마 루돌프의 노래 그리고 바트이슐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랑데부- 흥겨웠다가 안타까웠다가 요란했다가 절절해지는. 어느 캐릭터 하나 감정의 흐트러짐 없이 공연의 끝이 다가오면 뜬금없이 '황태자 루돌프'가 보고 싶어 진다. 어디선가 '내일로 가는 계단'이 곧 시작될 것 같고.


사실 난 2막보다는 1막이 좋다. 중후한 보이스로 노래하는 중년의 엘리자벳도 좋긴 하지만 내 스타일의 음악은 1막에 포진- 아마도 2막은 내용이 살짝 정치적이라 그런 듯.


제일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 (사진출처 : 엘리자벳 홈페이지)





죽음이라는 설정의 토드, 살인자이면서 해설자인 루케니가 여기저기서 등장할 때면 미하엘 쿤체는 정말 천재인가 싶을 정도로 극에 감탄을 하게 된다. 르베이 아저씨는 말할 것도 없고. 김소현, 손준호 부부의 케미가 그리도 좋다고 하니, 제대한 샤토드도 다시 볼 겸 한번 더 보러 가야겠다.

아! 신엘리도 봐야 하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유연석이 헤드윅을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