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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롱 Nov 12. 2020

넷플릭스가 오랜만에 내놓은 수작, 퀸스 갬빗

The Queen’s Gambit

퀸스 갬빗
(The Queen’s Gambit)

어머니의 자살로 혼자가 된 9살의 베스 하먼(안야 테일러 조이)이 보육원에 들어간다. 그곳의 지하 창고에서 관리인 샤이벌(빌 캠프)의 체스 플레이를 보고 베스는 한눈에 64칸의 세계에 빠져든다. 베스의 재능을 알아본 샤이벌은 그를 체스 연맹에 소개하고, 베스는 단숨에 신동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체스를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서 그가 이겨내야 할 것이 패배의 쓴맛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거의 기억과 보육원에서 중독된 약이 중요한 순간 매번 그의 발목을 잡는다.

넷플릭스에서 오랜만에 눈여겨볼 오리지널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바로 체스 천재의 일대기를 담은 ‘퀸스 갬빗’이다. 1983년에 출간된 월터 테비스의 동명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원작이 나온 이후로 무려 40여 년 만에 영상화되었다. 고인이 된 히스 레저의 감독 데뷔작이 될 뻔했지만 무산되고, 결국 스콧 프랭크 감독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주목받는 신예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의 눈을 통해 완성되었다.


‘퀸스 갬빗’을 보면서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전성기를 담는 것과 동시에 연대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가지 연대를 키워드로 ‘퀸스 갬빗’을 말해보려고 한다.


체스와의 연대

베스는 9살, 어머니가 동반자살을 계획했던 차 안에서부터 본인에게는 인생의 주도권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들어온 보육원에서도 "너희가 여기 있는 건 부모가 어떤 선택을 했기 때문이야"라는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자신의 삶에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확인당했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64개의 칸으로 이루어진 체스판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체스판을 떠올리게 하는 보육원의 안정제도 끊을 수 없었다.


패배를 인정하고 기권을 해야 할 때마다 베스는 포기하지 않거나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유일하게 주도권을 가지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체스판 위에서 타인에 의해 본인의 플레이가 무너졌다는 사실은 그에게 단순한 패배의 감각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연결된 고통의 감각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베스는 통제력을 느낄 수 있는 체스에 집착했고, 집착이 악의 고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극의 전체에 집중하면 베스는 체스와 끊임없이 둘만의 관계를 만들어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베스를 연기한 안야 테일러 조이는 원작을 읽고 연대의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누군가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을 찾게 되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체스와의 연대는 이 한 마디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체스를 통해 베스는 본인과 같은 감정을 가진 수많은 체스 플레이어와 소통을 하고 그 과정에서 그가 느꼈던 고립감, 우울감을 치유받았던 것이다.


여성연대 그리고 가족연대

‘퀸스 갬빗’은 여성의 연대뿐만 아니라 가족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가족이라 하면 혈연으로 연결된 관계를 떠올린다. 고아가 된 베스에게 혈연보다 더 진한 사랑을 보여준 2명의 가족이 있다.


첫 번째는 보육원에서 만난 졸린. 갑작스럽게 고아가 되어 보육원에 들어온 베스와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고, 서로의 유년시절을 채워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아무렇지 않게 찾아와 베스가 본인에게 그리고 보육원 친구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그가 혼자라고 느낄 때 조차도 여러 사람들이 베스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두 번째 가족은 양어머니 휘틀리. 휘틀리는 베스의 체스 천재의 면모를 알아봤고, 베스는 아무도 관심 없었던 휘틀리의 피아노 실력을 알아봤다. 세상에 어떤 누구보다도 가장 서로의 재능을 존중해주는 사이였다. 그리고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사이었다.


단란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아도, 내 곁을 채워주고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퀸스 갬빗’이 보여주는 가족의 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경쟁자 연대

극의 배경은 냉전시대로 이념의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는 명백한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다고 해서 대놓고 여성을 깔보는 인물도 있지 않다. 고아라고 무시하거나 이용하는 인물도 없다. 베스 자신조차도 체스판 위에서의 이념 갈등을 허락하지 않는다.


체스판 위에는 마스터로서의 경쟁의식과 유대감만 남아있다. 하지만 ‘퀸스 갬빗’은 라이벌 관계를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들어 자극이 되는 건강한 관계로 그려나간다.


막간을 이용한 TMI

1. 오로지 ‘퀸스 갬빗’을 위해 미국의 최고 체스 선생인 브루스 판돌비니가 350개의 체스 경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2. 코스튬 디자이너 가브리엘 바인더는 체스를 연상시키기 위해 격자무늬 옷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마지막 회에 나오는 올 화이트룩은 백색의 퀸을 떠올리게 한다.

3. 베스와 잠깐 동거(?)했던 해리 벨틱을 연기한 해리 멜링은 해리포터에서 얄미운 이모네 아들 두들리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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