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AN 화제작을 보고 왔습니다
“자신의 얼굴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 있으신가요?”
무엇이 겉가죽일뿐인 얼굴에 '부족', '충분', '정도'라는 단어를 붙이게 했을까. 그런 단어들은 왜 인간에게 코에 실리콘을 넣고, 눈두덩이에 칼을 대는 터무니 없는 행위를 하게 만들까. 그런 행위를 본인이 선택했다 하더라도 과연 본인의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을 ‘신데렐라’ 스토리를 재해석해 던진 부천국제영화제(이하 BIFAN)의 화제작 <어글리 시스터>를 보고왔다.
<어글리 시스터>의 신데렐라는 맞지 않는 유리구두에 자신의 발을 '구겨넣는' 의붓언니가 등장하는 유아용 이야기 대신, BIFAN의 색깔에 걸맞게 '발가락을 자르는' 의붓언니가 나오는 잔혹한 이야기를 재해석했다.
(발가락이 아니라 뒤꿈치를 잘랐다는 등 다양한 버전이 있다.)
신데렐라의 의붓자매는 어쩌다 자신의 발을 자르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그게 오로지 그녀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느끼기엔 이 영화는 그런 질문들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영화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주인공을 바꾸는 쉬우면서도 현명한 방식을 택했다. 신데렐라가 아닌 ‘못생긴’ 의붓동생 엘비라를 이야기를 이끌어 갈 주체로 사용한 것이다.
영화는 '엘비라'의 상상 속에서 시작한다. 상상 속의 엘비라는 왕자가 쓴 시 속의 여인이 되어 동화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달콤한 상상도 잠시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작고 허름한 성을 가진 영주와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새로운 가정에 적응하나 싶었는데, 재혼한 당일 양부가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양부의 유일한 딸이자 의붓언니가 된 '신데렐라'에게서 양부가 빈털터리에 빚만 남겼다는 사실을 듣게된다.
그야말로 귀족이라는 지위만 남은 돈 한 푼 없는 거지가 된 절망적인 상황에 한줄기 빛처럼 왕자가 신붓감을 찾아 무도회를 여니 귀족 처녀들은 모두 참가하라는 왕국의 전갈이 온다.
살 길이 없었던 어머니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더 이상 결혼하기 힘든 자신을 대신해 딸 엘비라가 무도회에서 왕자의 눈에 띄어 왕가에 시집을 가 집안을 살려야 한다는 야망을 품는다. 엘비라의 외모에 생계가 달리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엘비라의 외모는 점차 변하기 시작하고, 본인도 외모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된다.
급기야 해서는 안 될 짓까지 하게 되는데...
영화에서 단연 충격적이었던 장면들은 '성형수술' 장면들이다. 아무리 시대상황이 무식하게 수술하던 때라 해도 보는 내내 절로 '으'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특히 속눈썹 수술 장면은 너무 적나라해서 손가락 사이로 봤다. 스포라 말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장면은 보는 나까지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영화를 볼 때는 장르가 바디호러니까 징그러운 거겠지 생각하고 넘겼지만 영화가 끝나고 생각해보니 현대의 성형수술이라고 생각해도 어떤 사람들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많이 하는 코수술을 예로 들면 멀쩡히 기능하고 있는 코를 "살을 도려내 콧대에 무언가를 집어넣고 꼬맨다'라는 문장만 봐도 기괴하지 않은가. 다른 수술들은 설명할 것도 없이 기능에 이상이 없는 외모를 고친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생각해 보니 괴이하다.
주변의 평가로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고, 외모에 집착하게 되는 엘비라의 모습 또한 심적으로 고통스러웠다. 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제 기간 본 여러 작품 중에서 왜 굳이 이 작품으로 글을 쓰고 싶었냐면… 내 외모강박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1년에 한두 번 오는 '외모 정병'이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아주 세게 와버렸기에 더욱 와닿던 것 같다.
외모 강박을 혼자 소화하려다 참지 못하고 내 얼굴이 너무 이상하고 못생겼다며 가족들 앞에서 펑펑 울었다. 이 나이에 창피하게도… 그리고 코를 고치겠다며 여러 성형외과의 영상을 들여다봤다. 자가늑이니 기증늑이니 하는 단어들을 다 외울 정도로. (다행히 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이 영화와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다고 느껴진다. 영화를 보고 바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외모에 대한 고민을 나만 하고, 했고,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살아오는 내내 얼굴과 몸매에 대해서 끊임없이 평가받아오며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충분치 않다’라는 감정을 한 번쯤은, 아주 잠깐이라도 느꼈을 거라 예상, 아니 확신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평가와 생각들은 많은 여성들을 성형외과로 향하게 했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쌍꺼풀 수술을 했다. 당시엔 내가 원한다고 생각해서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먹고 여러 경험을 하며 생각이 깊어지고 나서 돌이켜 보니 100% 나의 선택이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수술하기 몇 달 전 한 선배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눈이 작다고 평가했다. 나는 그후 내 눈 크기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며 눈을 이리저리 크게 만들고 사진을 들여다 보며 내 눈이 얼마나 작은지 가늠해 보았다. 엄마도 대학교에 들어가니 쌍수를 하는 게 어떠냐고 나에게 은근슬쩍 권유했다. 물론 성장과정 중 주변에서 들었던 외모평가들도 한몫을 했다. 그런 것들이 합쳐져 내 쌍꺼풀 수술에 대한 지분의 70% 정도는 주변의 평가와 사회의 기준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영화 속에서도 초반의 엘비라는 자신의 외모에 컴플렉스는 가지고 있지만, 그 나이대의 아이답게 자신감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도회 준비를 위해 들어간 학원에서 자신보다 마르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게 되고, 외모로 인해 맨뒷줄로 밀리고, 모두의 앞에서 선생님에게 비웃음을 사면서 점차 자신감을 잃어간다. 그리고 코를 고치고 살을 빼고 속눈썹을 붙이면서 조금씩 앞줄로 나가게 되자 외모에 집착한다.
이 영화는 외모 외에 다른 페미니즘적인 요소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영화를 통해 확인하고 발견해보길 바란다.
BIFAN에서 장르 영화를 많이 보았지만, 장르 영화로만 기능하는 영화들은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반면, 장르를 메시지 위한 도구로서 현명하게 이용한 영화들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다음해에도 이런 영화를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