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불>
줄거리
어린 나이에 부유한 왕족 가문의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온 불불. 불불은 남편보다는 또래의 시동생 '사티아'에게 의지하게 되고 점점 그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남편은 질투심에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 사티아를 급하게 런던으로 유학 보낸다.
사티아가 없는 5년 동안 불불은 떠나기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고, 마을은 마녀의 짓이라는 흉악한 연쇄 살인사건에 공포로 뒤덮여있다.
불불과 마을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인도영화, 또 한 번 인도 사회를 겨냥하다
인도영화는 <당갈>에서도 인도의 가부장 사회와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인도 사회의 문제를 담아냈는데요.
<불불>은 조혼 풍습과 가정폭력을 공포 장르에 자연스럽게 녹이며 인도 사회의 여성문제를 조명했습니다. 2018년 한 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자살하는 여성 중 36.6%가 인도 여성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인도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15세 이전에 결혼하는 조혼 풍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 문제 또한 높은 자살률의 원인으로 생각됩니다.
불불을 데려온 외숙모는 발 가락지의 의미를 묻는 그녀에게 처음에는 '여기 신경을 눌러 주지 않으면 여자는 날아가려고 해'라고 아직 어린 그녀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명하지만 불불은 천진난만하게 '새처럼요?'라고 대답한다. 이에 외숙모는 '아니, 널 통제하려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감독은 이 장면으로 직접적으로 조혼 풍습을 비판했죠.
발 가락지를 보면서 서커스단의 코끼리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어린 코끼리 발에 쇠사슬을 묶어놓으면 성장해서 충분히 벗어날 환경이 되어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요. 조혼도 비슷한 행위라는 것을 표현한 장면이라고 느껴집니다.
마녀사냥
'마녀'라는 단어와 이미지를 영화 속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마녀라는 것은 보통 공포의 대상이죠. 하지만 역사적으로 '마녀'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생각해보면 당대 사회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여성들을 착취하고 처벌하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불불>은 '마녀'와 '여신'이라는 단어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사티아의 마녀사냥이 얼마나 어리석은 환상에 불과한지 보여주죠. 불불의 최후는 중세시대 마녀 화형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불불에 나왔던 남성들은 영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근본이면서 본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지 못하고 불불이 나서서 그러한 폭력적인 남성들만을 처단하는데도 마녀의 짓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영화 전반부에서 다정하게 그려졌던 사티아도 마녀를 잡기 위해 자신과 그녀의 추억이 담긴 숲 전체를 불태우고 성취감에 도취되어 웃는 모습을 보면 그도 예외라고 할 수 없죠. 사티아가 한 마디로 '조신해라'라고 불불한테 경고할 때 '너희는 다 똑같군'하면서 응수하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성들의 여신이 된 불불
시누이 '비노디니'가 초반에는 일부러 남편 인드라닐에게 사티아에 대한 이야기를 흘리면서 불불을 괴롭히는데 일조하지만, 본인 남편 마헨드라가 성폭행한 후 찾아가서 피를 닦고 옷을 입혀주면서 '그분은 좀 미치셨지만, 왕족이시잖아요.... 그분은 제정신이 아니지만, 그분의 형제가 당신을 돌봐줄 거예요. 조용히 하세요'라고 마치 본인이 결혼할 때 들었던 것 같은 얘기들을 이야기해 주죠. 이걸 들어보면 비노디니도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살아남기 위해서 본인도 그 일부가 되었겠죠.
마헨드라가 죽은 후에 그의 기일 때마다 축제 같은 제사를 보면 불불은 그를 죽여 비노디니를 자유롭게 해 준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불불은 가정폭력범 '딘카르'선생과 부인을 냉정하게 내쫓은 마부 그리고 어린 신부를 성폭행하려 한 남성을 처단함으로써 남성들에게는 마녀, 여성들에게는 여신이 된 것입니다.
<불불>은 여성 감독, 여성 각본, 여성 서사의 영화로 인도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잔혹동화를 콘셉트로 잘 녹여낸 작품 같습니다. 젠더 이슈가 세계적으로 떠오르면서 F등급의 영화가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특히 성 차별 문제가 심각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 인도에서 이런 시도의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인도 사회 내에서도 자정적으로 해결하고 하는 물결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