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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티아고 김솔 Dec 08. 2022

12/ 산티아고 100km 전, 고지가 눈앞이다

직장 그만두고 스페인 여행길에 오른 30대 딸, 은퇴 후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부모님과의 140일간 산티아고 순례 배낭여행을 기록합니다.


2,887km 찐으로 걷는 배낭여행

✅ 프랑스길 Camino Francés (2018)

✅ 피스테라, 무시아 Camino de Fisterra y Muxía (2018)

✅ 은의 길 Vía de la Plata (2022)

✅ 북쪽 길 Camino del Norte (2022)

✅ 영국 길 Camino Inglés (2022)



34일 차,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닿기 전 마지막으로 만나는 큰 도시, 오우렌세에 도착했다. 도시에 진입하자마자 규모가 큰 곳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러 상점이 즐비하고, 차도에 가득한 자동차들은 신호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바삐 움직이다.

거의 다 왔다


약국을 가장 먼저 들렀다. 어제 산길을 내려오던 중 엄마가 별안간 벌에게 쏘였다. 주변에 돌과 흙만 있던 지형이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벌 한 마리가 엄마 귀 밑을 쏘고 지나갔다. 신용카드로 벌침을 빼내 1차 처치는 했지만 벌겋게 붓고 통증이 가시질 않아, 쏘인 자리를 보여주고 연고를 건네받았다.


손 닿는 거리에 약국이 있고, 마켓이 있고, 없는 것 빼곤 다 있는 도시를 좋아한다. 그래서 도시 방문은 순례 배낭여행 중 짧은 동기부여가 되곤 했다. 큰 도시라고 해서 따로 관광을 하거나 뭐 특별하게 하는 일은 없지만, 종일 편히 누워 빈둥거릴 수 있는 쾌적한 숙소를 늘 손꼽아 기다렸다. 알베르게에서 지내면서 알게 모르게 쌓이는 불편함과 피로를 가끔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온천이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집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


오우렌세부터 표지석에 새겨진 잔여거리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세 자릿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 103km, 102km, 101km… 두 자릿수를 만나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사실 표지석을 제대로 신경 못쓸 만큼 언덕이 매우 높다. 뭔 놈의 동네 고개가 이렇게 가파른지 숨이 꼴딱 꼴딱 넘어간다. 와중에 아빠는 저만치 앞장서서 가고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엄마가 걱정되었는지, 한 고개를 넘고 아빠 가방을 두고 다시 내려와 한참 뒤떨어져 걷는 엄마를 마중 와서 가방을 건네받는다.

나그네의옷은 해님이 벗겨준다면, 순례여행객의 옷은 가파른 고개가 벗겨줍니다


그 높디높던 경사가 끝나고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에 도착하자, 100km 표지석이 나타난다. 땀 한 바가지를 흘리고 만난 상징적인 숫자에 새삼 의욕이 솟는다. 이제 두 자릿수다!

여기가 아닌가..? 다른 곳에 100km표지석이 있나 의심이 들만큼 다른 여행객의 흔적이 아무것도 없다. 에이 일단 찍자.


5일 후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한다. 은의 길도 앞으로 5일만 더 걸으면 끝이구나. 대체 언제 끝나냐던 1000여 km의 여정도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 흘러간다.

자, 이제부터 온 몸으로 길을 느끼자, 제대로 걸어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은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끝을 내고 싶었다. 부끄럽지 않은, 기분 좋은 모습으로. 투덜거리고 짜증이 가득했던 은의 길 초중반의 나, 스스로에게 창피한 모습을 만회할 시간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기억 속 은의 길을 멋진 인상으로 남기고 싶었다. 은의 길은 힘들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그대로 되풀이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다녀올만한 곳이야.라고 은의 길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도록 남은 시간을 길 위에서 제대로 누려보려고 한다.


은의 길은 힘들지 않다. 힘든 건 나지.(치킨은 살 안쪄요, 살은 내가 쪄요는 진짜 명언이다)

길은 항상 그대로 있을 뿐, 그것을 대하는 내 태도의 문제였단 걸 잘 알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나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바로 세우고 감사한 마음으로 길 위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은의 길 끝에서야.  


성당 앞 벤치에서 쉬던 중  때마침 종소리! 피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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