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 처음으로 유럽을 여행했다. 대학 동기와 함께 숙소와 항공을 여행사가 예매해주는 15일 7개국의 엄청난 일정이었다. 처음 만난 유럽은 내가 상상하던 꿈과 낭만의 공간 그 자체였다. 처음 도착한 도시는 프랑스 파리였다. 지금 보면 차마 볼 수 없는 화질의 디지털카메라로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내가 갔던 거의 모든 건물의 복도 사진이 남아있는 듯하다. 이후 이어진 이탈리아 로마와 베니스, 스위스 인터라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벨기에 브뤼셀 어느 놓칠 수 없는 곳들이었다. 이후 출장과 여행으로 유럽을 오 갈 때마다 첫 여행의 기억이 언제나 잔상처럼 남았다. 너무 짧게 다녀와 아쉬웠던 암스테르담은 일주일 단독 여행으로 따로 다녀왔고, 알프스 산맥의 감동을 잊지 못해 마테호른 하이킹을 다녀오기도 했다. 파리에 출장을 갈 때마다 에펠탑은 안 가더라도 오르셰 미술관을 들었다. 첫 여행에서 사랑에 빠진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대학생 시절 유럽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영국 런던은 나에게 힘들고 볼 것 없는 도시였다. 10일이 넘은 여정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쳤던 나와 친구는 런던에 도저히 관광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 런던아이도, 빅벤도 사진 하나 제대로 찍은 것이 남아있지 않다. 영국박물관에서도 입구까지 도착한 우리는 ‘어휴, 또 무슨 박물관이야!’라며 더는 못 걷겠다는 이유로 근처 한식집에 들어가 밥을 먹은 기억만 선명할 뿐이다. 어딘가에 런던은 ‘힘들고 피곤한 도시’라는 기억이 박혀있는지 첫 여행 이후 유독 인연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던 중 16년이 지난 지금 런던에 살기 위해 두 아이와 남편의 손을 잡고 이곳에 왔다.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와 같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첫 여행에서의 나처럼 런던아이도, 타워 브릿지도, 빅벤도 보러 갈 기운이 없었다. 눈앞에 쌓여있는 9개의 이민 가방, 아이들의 학교 입학, 각종 행정 처리 등 생활의 숙제들로 하루하루가 바쁜 이유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왔던 터라 흙탕물에 찌꺼기가 가라앉듯 가만히 나를 놓아둘 시간이 필요했다. 런던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조금씩 적응하면서도 런던 관광객이 아닌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첫 여행처럼 쫓기듯 여행하지는 않으려 애쓴다. 아이들의 컨디션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일상의 일들을 모두 해낸 후에 하나씩, 런던을 탐험하고 있다. 한국에서 언제나 무언가에 쫓기며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서 이곳, 런던에서만큼은 쫓기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
물론 휴직 이후 계속 들려 오는 후배와 동기들의 승진 소식, 세를 주고 온 집의 화장실 타일이 와장창 깨졌다는 소식이 가끔 마음을 헤집어 놓을 때도 있다. 한국에 무언가 중요한 나를 두고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런 날은 ‘무엇을 위해 이곳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기를 자처했을까?’라며 나 자신의 선택이 한심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나는 이곳에서의 단순한 매일 고집스럽게 살아내려 노력 중이다. 누군가에게 내세우지 못하더라도, 나 혼자만 아는 것이라도 스스로 이루고 싶었던 일을 해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온 이유일 것이다.
나는 매주 가족들의 식단을 짜고, 장을 보고, 밥을 하며, 같은 시간 아이들 학교에 가서 등하교시킨다. 아이들과 남편이 학교에 가는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미술관과 박물관을 주기적으로 찾고, 저녁 시간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올해 말까지는 평생의 숙제였던 영어 공부와 운동도 일상에 루틴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나는 이곳에서 지루하고 단순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기로 결심했다.
처음 런던에 발을 디뎠을 때의 피로감을 기억한다. 쫓기듯 지나온 시간을 뒤로하고 도착한 런던에서 느낀 고단함을 기억한다. 첫 여행에서 런던에서의 가장 좋았던 기억은 런던아이도, 타워 브릿지도, 빅벤도 아니었다. 평일 세인트 폴 대성당 앞 벤치에 앉아 공원의 햇빛을 받으며 느긋하게 먹던 마트의 샐러드였다. 유독 그날의 햇빛은 지금도 따뜻하게 떠오른다.
나는 런던에서 그렇게 단순한 매일을 산다. 따뜻한 햇볕 조각들을 모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