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놀이공원보다 박물관에 많이 간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 우리가족은 은색 프라이드를 타고 자주 가족여행을 갔다. 초등학교 시절 경주, 공주, 부여, 강릉 등등 전국을 누비면서 매년 여름이면 계곡을 갔고, 겨울이면 눈 쌓인 강원도에 가서 얼음 썰매를 탔다. 고드름을 따서 먹은 날도 있었고 3단 눈사람을 쌓아 놓고는 동생과 눈싸움하던 날도 있었다. 나와 동생은 놀이공원보다 박물관을 더 자주 다녔다. 도슨트보다 열정에 넘치는 아빠는 책에서 읽은 내용을 토대로 도슨트 뺨치는 해설을 해주셨지만, 나와 동생은 다리가 아프다며 앵앵 울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린이날이면 금난새 지휘자의 ‘동물의 사육제’ 음악회를 보러 갔고, 크리스마스면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을보러 다녔다. 은색 프라이드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쌓아온 나의 시간이었다.
우리가족의 은색 프라이드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무렵부터 10년이 넘도록 우리 가족을 싣고 전국을 누볐다. 4명의 탑승객과 짐을 싣고 대관령을 오르다 힘에 부쳐 골골대다 뒤에서 올라오는 차들의 경적을 한 몸에 받은 적도 있었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몇 번이고 주유소에 들려 기름을 넣으면서 휴지를 잔뜩 받아온 적도 있다. 은색 프라이드는 유년기 시절의 나를 강으로, 산으로, 들로 싣고 다녔지만, 놀이공원에 데려간 적은 극히 드물었고, 자그마한 경차였지만 오프로드를 달리는 사륜구동차처럼 전국을 달렸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1990년대 은색 프라이드 운전석 뒷주머니에는 항상 '전국 고속도로 지도' 책이 꽂혀있었다. 나와 동생은 먼 거리를 여행하던 중 심심하면 지도책을 들추곤 했다. 지도책 뿐만 아니라, 가족여행에는 항상 여행지에 관한 다양한 책이 항상 함께했다. 사진이 알록달록한 포켓북부터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까지 책의 종류는 항상 다양했지만, 나와 동생은 항상 책 속의 사진은 몇 번 뒤적여 보고는 뒷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보거나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여행의 시작은 대부분 아빠가 책에서 읽은 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여행은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무렵 다녀온 ‘경주 감은사지 3층 석탑’으로 이 또한 아빠의 강력한 의지로 가게된 곳이었다. 아빠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표지에 나온 ‘감은사지 3층 석탑’에 꼭 가보고 싶으셨다고 했다. 경주하면 ‘불국사’와 ‘석굴암’만 알고 있던 나에게 너무 생소한 곳이었다. 은색 프라이드 운전대를 잡은 아빠가 가고 싶다고 하니 따라는 가지만, 도무지 어떤 곳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서울에서부터 달리고 달려 도착한 경주에서 아빠는 허허벌판에 주차했다. 그제야 감은사‘지’는 감은사가 있던 터라는 것을 알았다. 당연히 기대하던 사찰 건물도 없었고, 어디가 입구인지 알 수도 없게 길조차 나았지 않았다. 그저 폐허였다. 그 폐허에 군더더기 없이 웅장한 두 개의 3층 석탑이 서 있었다. 사찰 건물이 모두 사라져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간 동안 그곳에 서 있었을 두 개의 석탑은 사춘기가 막 시작된 소녀의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던졌다.
그 이후 동생과 함께 10여 년이 지나 다시 한번 감은사지를 찾았다. '내일로 여행'으로 무궁화 열차를 타도 경주에 도착한 나와 동생은 그때 갔던 감은사지를 꼭 다시 가보자고 계획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이곳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열변을 토하던 그시절 아빠의 모습, 그곳에서 남긴 우리의 가족사진과 예상치 못했던 감동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우여곡절 끝에 감은사지에 다시 다다랐다. 8월의 찢어질 듯한 햇빛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나무 그늘 하나 없는 폐허에 두 석탑은 언제나 그렇듯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나름 2차 가족사진이라며 동생과 함께 셀카를 남기고 엄마, 아빠에게 사진을 보냈다.
나에게 여행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유년기를 함께 달린 은색 프라이드는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는 듯하다. 지도책과 여행서적을 잔뜩 싣고 달리던 은색 프라이드처럼 나는 여전히 어딘가를 여행할 때 지도를 연구하고, 지독할 정도로 여행지에 관한 책을 읽는다. 물론 시간이 흘러 기술의 발달이 조금 도와주고 있지만, 구글 맵이나 시티매퍼(City Mapper) 어플로 교통편을 확인한다거나, 온라인 검색으로 더 많은 활자를 수집한다는 것이 조금 달라지긴 했으나 여행의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런던에서의 삶은 은색 프라이드 뒷좌석에서 꾸벅꾸벅 졸던 어린아이에서 운전석에 앉아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책을 읽는 사람으로의 성장과 같다. 볼 것도, 할 것도 많은 런던에서 이제 만 나이로 5살, 3살이 된 아이들에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런던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은색 프라이드로 대관령을 넘어갈 때 뒤차들의 경적에 불안해했지만, 산꼭대기 휴게소에서 먹었던 감자떡이 기억나는 것처럼, 경주로 내려가는 지루한 고속도로에서도 길거리 뻥튀기 아저씨에게 뻥튀기를 사 먹으며 그곳을 가던 기억이 남은 것처럼, 늦여름 바닷가에서 작은 게를 잡다가 꽃게가 먹고 싶다고 엉엉 울던 나를 위해 수산물 시장으로 뛰어가 꽃게를 쪄주시던 엄마와 아빠가 생각나는 것처럼, 나의 아이들에게 따뜻한 기억을 담아주기 위해 런던을 달리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