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정체성이 내는 시너지에 관하여
퇴사 후 독립적으로 일하며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마케터이자 크리에이터이자 에디터이자 컨설턴트다. 이 모든 건 다른 일이지만, 이어지는 부분이 많아 시너지가 생긴다. 네 가지 정체성 중에서도 가장 오랜 기간 해왔으며, 애정을 가진 두 정체성이 내는 시너지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려 한다.
1. 나는 8년차 마케터다. 7년간 마케팅 에이전시부터 시리즈B 규모의 스타트업을 거쳤다. 프리랜서 마케터로 독립한지는 이제 만 1년이 되었다.
2. 나는 네이버 여행 인플루언서이며, 여행하며 일하는 프리워커 고졔다.
마케터 고지혜와 크리에이터 고졔는 시너지를 내며 공존한다.
마케터가 개인 채널을 키워본 경험은 좋은 자산이 된다. 회사에서 브랜드 채널을 키워본 경험도 물론 중요하지만, 회사에서 낸 성과는 100% 내 힘으로 만들었다고 보긴 힘들다. 그 성과를 내기까지 동료, 광고비, 시스템 등(회사의 인적, 물적 자본)이 알게 모르게 개입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혼자' 실행해 보고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본 경험은 큰 자산이 된다.
내 마케팅 포트폴리오에는 개인 채널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고,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다 보면 이 부분 좋게 봐주신다. 실제로 한 대표님은 내 인스타그램 채널을 보고 협업 여부를 결정하기도 했다.
반대로 크리에이터로 일을 받을 때, 내가 마케터라는 사실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나 또한 크리에이터를 섭외하는 마케터 입장이 되어보았기 때문에, 담당자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잘 캐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스무스하고, 브랜드 소구 포인트를 함께 고민하며, 그 포인트를 콘텐츠에 잘 녹인다.
그래서 내게 협업 제안을 주는 담당자분들은 기본적으로 나에 대한 '신뢰'를 갖는다.
마케팅 업무를 하며 얻은 인사이트를 내 채널에 적용하고, 내 콘텐츠를 만들며 배운 점을 마케팅 업무에 적용하며 시너지를 낸다.
예를 들어서 나는 여행 브랜드 채널을 운영하며 수 천개에 달하는 검색 키워드를 다뤘다. 그래서 시즌에 따라 사람들이 많이 검색하는 키워드, 여행지별 인기 키워드 등에 대한 인사이트가 쌓였다. 이 인사이트는 개인 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반대로 내 인스타그램에서 릴스를 만들어보고, 여러 방향으로 테스트해 보고, 터지는 콘텐츠도 만들어냈다. 여기서 얻은 인사이트를 브랜드 숏폼 콘텐츠를 만들 때 활용한다.
한쪽에서 효과를 봤던 것이 다른 한쪽에서도 통할 때, 짜릿함을 느낀다.
한쪽에서 부진해도 다른 한쪽에서 채워주는 게 있어, 불안함 속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지난 연말에는 진행하던 마케팅 프로젝트 몇 개가 막을 내리며, 수입이 반 이상 줄어들었다. 연말은 그다음 해의 전략을 세우고 예산을 짜는 시기이므로, 마케팅 외주의 비수기이기도 하다.
프리랜서의 수입이 들쑥날쑥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만, "이 상황이 계속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감에 휩싸였다. 다행히 그 불안감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마침 그 시기에 크리에이터 광고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마케터 고지혜가 굶주리면 크리에이터 고졔가 보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물론 앞으로 둘 다 잘 되는 시기도, 둘 다 잘되지 않는 시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하나의 자아와 정체성에 매달리며 '이게 잘 안되면 나는 끝이야'라는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다. 변화가 생기더라도 나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며 유연하게 대처하는 힘을 기르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밖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일하며 내 삶이 다채로워짐을 느낀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내 뿌리인 '콘텐츠'를 기반으로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사실 이 답변은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이게 내가 가장 보람을 느끼고 즐겁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꼭 내 정체성을 마케터, 크리에이터, 에디터 등 하나로 단정지을 필요가 있을까? 앞으로도 큰 맥락을 갖고 나를 수식할 수 있는 말을 늘려가고 싶다. 다채로운 삶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크고 작은 도전을 이어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삶의 모습을 지닌 사람들과 연결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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