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케이션’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이전부터
나는 언제부터 워케이션을 다니기 시작했을까? 거슬러 올라가 보면 때는 2018년 여름, ‘워케이션’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이전부터다. 첫 회사를 퇴사하고, 프리랜서 에디터 일을 얻었다. 일을 들고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떠났다. 그게 내 워케이션의 시작이었다.
첫 회사는 굉장히 수직적이었다. 사람도, 환경도 삭막했다. 꽉 막힌 사방, 타자 소리만 울리는 적막함. 사무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답답했다. 나는 항상 자유로운 환경을 갈망했다. 짧게나마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제주도로 떠났다.
제주에서의 나의 일은 여행 콘텐츠 원고를 쓰는 거였다. 원고 마감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그때마다 제주의 어느 카페에서 노트북과 시간을 보냈다. 사진을 고르고, 보정하고, 원고까지 작성하면 낮 시간이 다 갔다. 원고 마감일만큼은 놀러 가자는 제주도 친구들의 제안을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괴로웠다. 너무 놀고 싶어서.
그래서 그 제안을 뿌리치지 못한 적도 있다. 날씨가 좋아서, 하늘이 예뻐서, 바다가 반짝인다는 그런 이유로. 그런 날에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원고를 작성해야만 했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참 멋졌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참으로 힘든 거였다. 일과 쉼의 비중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삶에 대한 불안감도 컸다. 모든 것이 낯설고 더뎠다.
제주살이가 끝나고 취업하면서 자연스레 나의 첫 워케이션은 마무리되었다.
두 번째 회사는 첫 회사와 달리 수평적이고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곳이었다. 게다가 휴가와 별도로 사무실이 아닌 그 어느 곳에서든 일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 기간’을 부여했다.
회사 선배들과 떠난 워케이션은 생각보다 효율적이었다. 협업하는 사람들과 함께 떠나오니,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었다. 낮에는 반차 쓰고 다 같이 놀고, 밤에는 숙소에서 일했다. 또 어느 날은 코워킹 스페이스에 가서 하루 종일 일하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밤에 카모강으로 야경을 보러 가거나, 이자카야에서 맥주를 마시는 등 짧은 여행을 즐겼다.
‘놀 땐 놀고, 일할 땐 일하자’는 분위기로 선배들과 함께하니 일과 여행이 균형을 이뤘다. 이때 처음으로 워케이션의 효율성을 경험했다.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라고 불리는 치앙마이로 두 번째 해외 워케이션을 떠났다. 이번에는 회사 다른 팀 동료들과 함께했다. 일하는 날보다 휴가를 쓴 날이 더 많았고, 일하는 날은 동료들과 거의 겹치지 않았다. 혼자 일하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졌고, 뛰쳐나가 놀고 싶었다. 고백하자면 일보다는 여행에 치우친 워케이션이었다.
집중해서 끝내야 할 업무가 있던 날, 노마드들이 모인 공간을 찾았다. TCDC(Thailand Creative Design Center)라는 치앙마이 라이브러리다. 많은 이들이 노트북을 펼치고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도 그사이에 자리 잡았다.
이날은 클라이언트와 줌 미팅이 있었다. 참여자는 한국에 있는 선배와 싱가포르에 있는 클라이언트, 그리고 태국에 있는 나. 각자 다른 나라에서 같은 시간에 미팅하다니, 왠지 그 상황이 멋졌다. 나 진짜 디지털 노마드가 된 것만 같잖아?
치앙마이 워케이션을 계기로 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워케이션은 장소는 발리로 정했다.
발리 한 달 살기를 떠나려 했건만, 팬데믹을 겪으며 좌절됐다. 이때부터 비대면 근무가 일상화됐고, ‘워케이션’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사이 이직도 두 번 했다. 원격근무가 보장된 회사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워케이션을 다니기 시작했다.
각 지자체에서는 로컬 활성화의 일환으로 다양한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내놓기 시작했고, 선택지가 너무나도 많아졌다. 하지만 워케이션에 이미 익숙해진 나는 잘 짜인 프로그램보다는 자율적으로 다니는 게 편했다. 워케이션에 최적화된 공간을 찾는 일에도 꽤 재능이 있었다.
자율적인 계획하에 제주, 공주, 고성 등 국내 다양한 곳으로 워케이션을 떠났다. 그리고 최근(2022년 12월)에 해외 워케이션을 재개했다. 한때 나는 출근하는 게 너무나도 괴로운 사람이었는데, 일하는 환경에 변화를 줌으로써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래서 그 경험과 인사이트를 하나씩 기록해보려 한다. 이 기록을 모아 책을 출간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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